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4. 이제 절반쯤.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4)
이제 절반쯤 왔나?
이 웅 재
차는 계속 달린다. 쓸데없이 허비한 시간까지 벌충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달린다. 이제는 지형이 조금 변하여 캠핑촌 같은 곳이 나타나며, 나무들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 길은 왕복 각 1차선씩으로 좁았고, 긴 기차의 행렬이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있어 반가웠는데, 아, 다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길고 긴 기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끝나자 좌측으로 보이는 시퍼런 물, 저건 호수일까, 바다일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 때문에 내 윗눈썹과 아랫눈썹은 서로 도킹을 할 시간이 없었다. 식곤증으로 졸립기는 한데 졸면 안 되는 상황, 이렇게 난처한 상황이 편도 1차선 차로와 함께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호수 끝. 이곳에서 보니 바다가 아닌 호수였음이 분명해졌다. 의당 그럴 것이었다. 산과 산, 그리고 또 산, 그 가운데에 무슨 바다가 있었겠는가? 너무나 크고 긴 호수였기에 바다처럼 보였던 것이다.
마을이 있어 끊어졌던 호수는 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이어진다. 오른쪽 앞쪽으로는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지나가고 있는 기차가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의 기차들은 왜 한결같이 긴 것인가?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것은 비행기….’ 갑자기 어렸을 적의 동요가 생각이 난다. 긴 것을 보면 왜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스르르 눈이 감긴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이 잠만 자면 되겠는가 싶어 억지로 눈을 뜨고 바라보니 길은 계속 편도 1차선으로 이어지는데, 우리의 앞에는 새까만 중형 승용차 한 대가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다. 너무 답답해서 경적이라도 한 번 울려볼까 할 즈음이 되니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나오고, 그 차는 다행히 그 마을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간다.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한 명의 여자, 복색이 특이하다. 얼핏 우주복인지 비옷인지 모를 복장이었다. 마을을 지나면서 바라다보는 호수는 물이 정말로 파아랬다. 호수 가운데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지(空地)섬이 다정스러웠고, 섬 주위의 그 잉크 빛 같은 푸름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픈 느낌이 든다.
차는 다시 서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까아만 소형차 한 대가 느릿느릿 우리 차를 막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짐차 한 대가 같은 속도로 따르고 있어 슬슬 짜증이 날 즈음해서, 다행스럽게도 길이 편도 2차선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시원스레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땅은 거의 평원지대, 거기에 가끔 두서너 채의 축산농가가 보이더니, 가끔은 농작물을 심고 있는 밭도 더러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으로는 호수가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딸내미가 넘겨주는 여정표를 받아보니, 이곳은 바로 Shuswap Lake(슈스왑 레이크)가 감싸고 있는 호반의 도시 Salmon Arm(새먼암)이었다. 대개 점심을 먹은 후에 운전하게 되는 이 길에서는 흔히 졸음운전을 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이곳에서 잠시 쉬고 가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빠듯한 우리는 그럴 수도 없었다.
사위 혼자서 하는 운전, 얼마나 피곤할까? 그가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급적 많은 경치를 눈 속에 퍼 담아야만 한다. 오른쪽으로는 흰색 뾰죽지붕의 멋진 Inn, 그리고 빨간 집의 Motel이 나타나더니, 길은 다시 편도 1차선으로 바뀌었다. 조금 더 달리니 툭 트인 평원분지가 나타나면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Rona Home Centre도 보이고 맥도널드 표지판도 나타난다. PICCADILLY PLACE MALL, Shell 주유소, Medical Centre까지도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KFC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호수마을 속의 인공호수인가, 아담하고 조그만 호수가 나타났고 거기서는 멋진 분수마저 뿜어져 올라가고 있었다.
마을을 거의 벗어나면서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고 손을 드는 아이도 있었는데, 세워주는 차는 하나도 없었다. 그림 같은 농가의 모습이 우리의 눈을 시원스레 씻어주었으며, 왼쪽으로는 커다란 목재공장도 보인다. 아내의 말로는 캐나다는 목재가 좋아서 목공품이 유명하다고 한다. 아내는 어제 들렀던 가게들에서도 둥그렇게 만들어 놓은 단단하게 보이는 도마를 무척이나 사고 싶어하는 눈치였었다. 그렇다. 목재는 열대지방의 것보다는 추운 지방의 것이 그 재질이 단단하여 좋은 품질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길은 다시 편도 1차선, 그런데 앞쪽에는 또다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서행을 하고 있다. 그 차, 그래도 눈치가 있었다. 우리 차가 조금 가까이 뒤를 쫓자 눈치를 채고는 속력을 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 차 2대가 달리고 달린다. 좌측으로는 아직도 호수가 길을 따라 이어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의 빽빽한 삼림이 우거져 있었다.
2차선으로 넓어지는 길이 나오자 우리의 차는 앞의 차를 추월했고, 아이들은 저희 외할머니와 함께 희희덕거린다. 호수는 언제나 끝이 날 것인가? 다시 편도 1차선, 호수 쪽으로 공터가 있기에 차를 잠시 세우고 구경하려 하였으나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좋은 관망처가 못 되어 아쉬움을 접고 다시 달렸다.
호수가 끝나는 곳에 SICAMOUS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이제 목적지의 절반 정도를 온 셈이다. 마을의 끝에는 일자식 연립 Motel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씩은 영화 따위에서 악당에게 쫓기는 주인공이 머물던 여관 같은 것이 보였는데, 딸내미의 말에 의하면 이곳의 모텔 구조는 침실과 침실의 구분이 없고 그냥 뻥 뚫려진 구조란다. 값은 우리나라의 여관처럼 싸구려라서 그런대로 여행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고 했다.
앞에 보이는 산은 눈이 덮여있었고, 아까는 상당히 더운 날씨였는데, 잠시 차창을 열어 보았더니 이곳은 바깥 공기도 무척 차가운 편이었다. 한참 달리던 길 가운데에 느닷없이 노란 옷 입은 할머니 한 분이 ‘STOP’ 팻말을 들고 우리를 가로막는다. 공사중이었다. 한쪽 길을 막고 있으니 왕복할 수 있는 길이 1차선뿐이라서 한쪽편의 차량을 막고 상태편의 차량을 통과시키는 일방통행방식의 차량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를 세운 할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와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사위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억양의 영어였다고 한다. (2012.3.25.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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