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6. 화장실이 무.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6)
화장실이 무서워요
이 웅 재
서영이가 화장실엘 가고 싶다고 해서 ‘For Sale’이라고 써 놓은 집의 반대편 쪽에 있는 화장실엘 데려다 주었더니 조금 있다가 나온 서영이가 말한다.
“화장실이 무서워요.”
왜 그럴까 하고 가 보았더니, 이런?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했었다는 점을 이런 데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서영이는 다행히 소변만 보고 나왔기에 그런대로 다행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기차가 달리고, 좌우의 높낮이가 다른 터널 셋이 연달아 나타난다. 높낮이가 다른 터널, 여기서 처음 보았다. 상식을 깨뜨리는 그 발상에 놀랐다. 높낮이만 다른 것이 아니라 오전 무렵에도 보았듯이 오른쪽으로는 유리인지 플라스틱인지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터널이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만 밖을 내다볼 수 있을 뿐 길 넘는 눈이 덮여 있는 때문에 밖이 보이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길 양 옆으로는 1m가 훨씬 넘는 눈들이 쌓여 있어 나름대로의 가드(guard) 구실을 하고 있었다. 우리와 역방향으로 지나가는 화차는 차량이 모두 2층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차는 다시 약간의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는데 우리는 지금 아까 보던 설산의 가운데를 뚫고 지나간다. ‘시속 70km’라는 팻말이 나오고, 개스 충전소도 나타난다. 우리는 지금 설산과 설산의 협곡을 지나간다. 또 다시 터널, 터널, 터널, 터널, 터널…눈이 쌓이지 않는 곳에는 그냥 시멘트 기둥만 서 있는 곳도 있다. 눈이 쌓일 만한 곳은 가로막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유리창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냥 시멘트 기둥, 아니면 가로막만 건너질렀을 뿐이었다.
이건 또 웬일인가? 오른쪽 산은 정상 거의 가까운 곳까지 눈 덮인 모습이 아니었다. 정상 부분에만 눈이 쌓여있는 모양으로 보이며, 그 위쪽으로는 눈 빛깔과 같은 흰색 구름이 떠도는 하늘, 눈과 구름이 잘 구별이 되지 않고 있는 산이었다. 양지 바른 곳이어서일까?
눈꽃을 달고 있어 저절로 이루어진,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들을 뒤로 뒤로 젖히면서 우리의 차는 달리고 또 달린다. 산길, 동부 캐나다에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원 길이었는데, 이곳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길이다.
한 마디로 부럽다. 이런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인가? 그마저도 분에 넘쳐서인가? 남북으로 갈라져 아웅다웅하고 있으니…. 이렇게 넓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연히 마음도 넓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간벌(間伐)이 아닌 넓은 공터를 만들면서 벌목한 장소가 나오는 것을 보니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벌일 모양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환경론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날 법한 개발로 보이지만, 이곳에는 현수막 하나 없다. 나도 한 때에는 천성산에 터널이 뚫리면 도룡뇽들이 모두 다 죽는 줄로만 잘못 알고, 다른 이들에게 그 반대를 위한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권유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부끄럽다. 반대를 위한 반대, 무조건적인 반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사람과 자연은 서로가 친화적일 때 그 상생의 가치를 발휘할 수가 있다. 무조건 놓아두기만 하는 것이 모두 다 최선은 아니다. 자연이란 무조건 그대로 놓아두기만 하는 것도, 또 지나치게 간섭하여 파괴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차가 속도를 줄인다. 신나게 달리던 차인데 웬일일까? 함께 속도를 줄이면서 보니, 아하, 일반차로 위장한 경찰차가 차량 2대를 잡아놓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앞차 2대와 함께 서행을 하고 가는 길에 오른쪽에서 얼핏 사슴 한 마리가 보이더니 왼쪽에서도 순간적으로 사슴 한 마리가 지나간다. 그러니까 이곳은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현하는 곳이다 보니 경찰의 단속이 심한 곳인 모양이었다.
조금 더 가다가 주유소가 있어 주유를 하고 그 옆쪽에 맥도널드 가게가 있어서 거기서 햄버거라도 사가지고 가기로 했다. 목적지도 산속 동네라서 9시가 넘는 시간에 도착하여서는 먹을 것이 없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위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계속 혼자서만 운전하는 일도 힘든 일일 터인데, 세세한 데에까지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이 든든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다시 떠나가는 길 뒤쪽으로는 눈 덮인 산과 산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다. 왼쪽 산에서는 이따금 사슴이 출몰하는 것이 보였다. 아직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가 이어졌다. 이제는 대관령보다 위험한 길이 되었다. 조심조심 운전을 해야 한다. 앞으로도 2시간 넘게 가야 하는데 걱정이었다. 다행히 얼마 더 달리지 않아서 길은 넓어져 편도 2차선으로 바뀌면서 낭떠러지가 우리가 달리는 반대편쪽으로 옮겨진 데다가 왕복차선의 가운데에는 높은 시멘트 턱까지 만들어 놓아서 안심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니 다시 오른쪽이 낭떠러지가 된다. 하지만 계속 2차선이라서 1차선으로 달리고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왼쪽 산쪽으로는 계속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아마도 사슴 같은 야생동물이 도로를 건너질러 이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시설물로 여겨진다. 오른쪽도 차츰 낭떠러지와는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역시 계속 철조망을 쳐놓은 것이 보인다. 가끔은 도로의 지하로 도로를 관통하는 동물들의 지하통로도 있는 듯싶었다. (2012.3.26. 원고지 15매)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8) 환상적인 Banff Springs Hotel과 근처의 호수 몇 곳을 돌아보다 (0) | 2012.03.29 |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7) 집을 떠나서는 먹는 것이 남는 것인데… (0) | 2012.03.28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5) 캐나다의 동서부를 잇는 대륙 횡단 철도의 LAST SPIKE를 박은 곳 (0) | 2012.03.25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4) 이제 절반쯤 왔나? (0) | 2012.03.25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3) 산중 COSTCO에서 대형 피자로 점심을 때우다 (0) | 2012.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