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50. 순수 그 자체.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50)
순수 그 자체의 새하얀 공터와 까마귀발 빙하
이 웅 재
4월 19일(화) 맑음. 4․ 19 혁명 기념일.
역시 어제의 노독(路毒)을 풀기 위해 9:30쯤 되어서야 3박(泊)을 했던 Best Western Hotel을 출발했다. 날씨는 어제 아침처럼 청명하였다. 원래 일기예보에서는 우리가 Banff에 머무는 3일 동안엔 계속 눈이 내린다고 해서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차를 국도로 진입시켰다. 그 동안 이곳저곳 다니느라고 이 길은 여러 번 다닌 곳인데도 무언가 나타날 듯한 느낌이었다. 눈밭 위에는 사슴 발자국, 곰 발자국 등이 어지러웠으나 실물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Banff에는 호텔수가 50여 개인데, 추정되는 늑대의 개체수가 역시 50여 마리라고 했다. 아마도 이곳의 호텔 소유주는 모두가 늑대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으나, 호텔의 서비스는 늑대가 아니라 양이었고 사슴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다니며 우리가 만난 야생동물도 대체로 산양과 사슴이었다. 그나마 그렇게 자주 보이는 것은 아니라서 종한이가 투덜거린다.
“아빠가 너무 빨리 달려서 못 보겠어.”
대신 이 눈의 세상에 와서 예상 밖으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눈사람을 처음 보았다. 눈사람은 전체적으로는 무척 쪼그마한데 몸체는 상당히 뚱뚱하고 위쪽 끝부분은 매우 뾰족한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모습과는 천양지차라서 나름대로 볼거리가 되었다.
가끔 나타나는 공터는 새하얗다. 너무나 깨끗하다. 그건 순수 그 자체였다. 순수란 누구나가 선호한다. 순수란 모든 사람들이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무언가로 채우고 싶은 강렬한 욕망,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빛깔로 그 순수를 채색한다. 파란색의 빛깔로 칠하기도 하고 빨간 빛의 색채로 단장하기도 한다. 노란 빛깔로 바꿔버리기도 하고 초록빛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순수란 순수 그대로 머물러 있기가 힘들다.
인생으로 친다면 어떤 빛깔로 물들여지는가에 따라 그 행로가 달라진다. 한 가지 빛깔로만 스며드는 것이 좋을까, 여러 가지 색채로 도색되는 것이 나을까? 한 가지 빛깔로 색칠되어지는 인생은 좋거나 나쁘거나 한 곬의 삶으로만 살아가게 된다. 좋은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면 다행스럽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고난의 일생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바라는 것일까? 나름대로 바람직한 길이라고 택했던 것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때에는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행로를 선택하는 일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 번 바뀌고, 두 번 바뀌고….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먹을 듬뿍 찍은 붓으로 단숨에 그려내는 담백한 수묵화가 있는가 하면, 이색 저색 혼합하고 덧칠하여 그리는 수채화도 있지 아니한가? 어떤 그림이 더 좋은가는 그 그림을 소장하는 사람, 또는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서 견해가 다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우리의 애마 밴은 어제 탐승했던 Louise Lake의 북쪽에 있는 Herbert Lake에서 잠시 멈췄다. 앞쪽으로 보이는 산은 중턱 이상은 흰색 일색이요, 그 이하 부분은 녹색에 흰 점들이 가끔씩 찍혀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중간 위쪽은 바위로 이루어진 곳이라서 흰 눈으로 채색된 하얀색으로 온통 덧칠되었고, 그 아래쪽은 숲으로 뒤덮여 있는 곳에 가끔씩 바위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였다.
앞쪽에서 ‘하나투어’ 버스가 지나간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도 그 차를 바싹 따라서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Crowfoot Glacier(까마귀발 빙하)가 나타난다. 여기가 Louise Lake 북쪽 32km 지점이라고 한다. 해발 3,050m의 Crowfoot Mountain 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빙하의 모양이 까마귀의 발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나는 아무리 보아도 까마귀발처럼 보이지를 않는다. 금강산 만물상에서도 가이드가 어떠어떠한 모양이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어떤 때는 그것을 찾을 수 없어 계속 물을라치면, 가이드는 점잖게 말하곤 했었다.
“마음이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법이지요.” 아무래도 나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 못 되는 듯은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기분이 떨떠름했지만, “아, 이제야 보았어요.” 하고 맞장구를 치곤 하였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분명 마음이 착한 사람은 아닐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까마귀발 빙하는 발견될 당시인 19세기 초에는 3개의 발가락이 분명했었다는데,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산사태로 맨 아래 빙하는 잘려나가 버렸고 지금은 두 개의 발만 겨우 남아있는데 그 두 번째 발도 차츰 녹아 없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나 같은 사람이 더욱 많아질 때쯤이면 아마도 저 까마귀발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고, “옛날에는 저 산에 까마귀발 빙하가 있었대.” 하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빙하의 두께는 약 50m이며, 빛깔은 푸른빛을 띠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까마귀발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은 근처에 있는 Bow Lake으로 합류한다고 한다. 그것이 흐르고 흘러 보우 강을 이루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 까마귀발 빙하가 The Fairmont Springs Hotel의 앞쪽에 흐르는 보우 강의 발원지가 된다는 말이겠다.
그 아래쪽 하얀 눈이 쌓인 낭떠러지 중간쯤에는 물결무늬 3개가 그려져 있었다. 무엇이 그랬을까? 그 왼쪽에는 여러 사람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모양의 산이 있었는데, 그 옆 산정에서 스키어 2명이 신나게 스키를 타며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까 아까 본 그 물결모양도 바로 스키를 탄 자국들인 듯싶었다. (2012.3.30.원고지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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