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51) 무상을 넘어 달관의 경지로…

거북이3 2012. 3. 3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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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51)

     무상을 넘어 달관의 경지로…

                                                                                                                                                                                                    이 웅 재

 

보고 또 보아도 신비로운 산과 산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산은 구름과 어울려서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서부터가 구름인지 구분이 잘 안 되기도 했다. 이 많은 산과 강, 그리고 호수의 이름들은 누가 다 붙였을까? 지명의 유래들을 캐어보면 거의가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이름이었다. 지금도 인구가 얼마 안 되어 아옹다옹 살아가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지만, 그 옛날 원주민만 살던 때는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이제는 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으니, 서글프고 또 서럽구나. 인생살이에서 무상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는데,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호수를 보고 종한이가 한 마디 한다.

“물이 참 깨끗하다.”

서영이가 받는다.

“물 아니야, 눈이야, 눈.”

둘 다 맞았다. 호수는 호수인데 얼어붙은 위로 티 없이 흰 눈이 수북이 쌓였으니 말이다. 눈도 녹으면 물이 되고, 빗물도 날씨가 차면 눈발로 날릴 수가 있는 것인데, 한번 간 인디언 원주민들은 다시 찾아볼 수가 없으니, 어찌 무상하지 않을까 보냐?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딸내미가 입을 떼었다.

“이런 곳에는 무언가 나올 법한데….”

아내가 받는다.

“개뿔도 없다.”

개뿔도 없는 오른쪽 성벽 위에는 수십 명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형형색색의 사람 형상과 같은 바위들이 서로 키를 다투고 있었다. 차는 달리고 달려서 Saskatchewan(서스캐처원) River Crossing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였다. Saskatchewan은 인디언들의 말로 '빨리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이 강의 물은 북극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Crossing에는 Gift Shop 등이 있었다. 상점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곰 인형이 반가이 맞아주기에 그와 함께 사진도 찍었지만, 우리 말고는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썰렁한 느낌이었다.

그 상점 옆쪽으로는 가지가 떨어져나간 사시나무의 옹이가 마치 사람의 ‘눈[眼]’처럼 보였는데, 그러한 눈이 여러 개였다. 무엇을 보려고 저러는 것일까? 제철이 아니라서 점심을 해결할 길마저 없어 차 안에서 빵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인생무상을 넘어 ‘거지 조상 안 가진 부자 없고, 부자 조상 안 가진 거지 없다.’고 달관(達觀)의 경지를 드러내는 말이라도 한 마디 해주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왼쪽으로는 커다란 굴뚝을 세워놓은 것 같은 산이 우뚝 솟아있고, 오른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돌산이었다. 다른 돌산과는 달리 돌에 금이 많이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물도 빨리 흐른다고 했으니, 그만큼 이곳의 지세가 급박한 모양이었다. 산들도 모두가 고산(高山)이어서 대체로 3,300여m 이상의 높이란다. 멀리 보이는, 구름이 휩싸고 있는 산과 산 사이에는 오래된 성곽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경관도 있었다.

“어, 저기 새끼 곰 좀 봐!”

아내가 소리쳤다.

“어디, 어디?”

모두들 눈을 부릅뜨고 새끼 곰을 찾아보았으나 허탕이었다. 누가 곰을 둔하고 미련하다고 하는가? 저 새끼 곰은 그렇게 아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재주도 부리는데…. 더구나 ‘새끼곰’은 귀여운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동물이 아니던가? 그러나 아무리 눈을 휘번득거려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자, 서영이가 한 마디 한다.

“여우 같은 곰이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요망하고 간사한 존재를 흔히 여우에다가 비겨 말한다. 그런데 지금 저 새끼 곰은 너무 얄미운 구석을 남겨주어서 곰의 이미지와는 거의 상반된 여우의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가끔 가다 보면 어린아이들의 말 속에 놀라운 진실이 들어있음을 본다.

Saskatchewan Crossing(교차로)에서 북으로 26km 지점에 이르니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넓은 절벽이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Weeping Wall이다. 벽 위쪽으로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서 겨우내 쌓인 눈과 얼음이 조금씩 녹아 흘러내려 마치 절벽이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눈물의 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눈물의 벽이 있는 산은 마치 그 생김새가 타이타닉 호를 닮았다고 타이타닉 산으로 불린단다. 겨울철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기까지 원정을 와서 빙벽등반을 하는 유명한 곳이다. 경사가 조금 완만한 곳은 겉으로는 눈이 덮여 있는 빙벽으로 보이지만 속은 얼지 않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하는 곳이라고 했다. 가끔은 위쪽의 얼음이 녹아 그 조각이 떨어져 내리는 것도 보인다.

주위에 있는 산들은 모두가 바위산이어서 아래쪽은 상록수들이 우거진 녹색을 띠고 있지만, 이곳의 timber limit(timber line: 교목한계선)인 해발 2,000m-2,300m 이상인 산 중턱의 위쪽으로는 회색빛, 혹은 흰빛의 바위들이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스핑크스를 닮은 산도 있었는데, 옛날에는 스핑크스도 담배를 피웠던 것일까? 스핑크스의 입 부분에서부터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스핑크스의 담배연기를 피해서 해발 2,330m의 길을 좀더 달리니 Big Bend라는 고갯길이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캐나디언 로키의 길들은 고산지대를 빙글빙글 돌면서 이어지면서도 우리나라의 대관령이나 금강산 길 같은 급박한 모양의 꼬불꼬불한 길은 별로 없었는데, Big Bend는 완전히 U자형 길이었던 것이다.

길가에 치워놓은 눈이 녹아 있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온갖 동물들이 아가리를 떠억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귀여운 강아지 새끼처럼 생긴 놈도 있고, 인자한 얼굴에 빙긋 웃음을 머금고 있는 노인처럼 생긴 모양도 눈에 띈다. 그렇다. 세상에는 이런 모습도 있을 수 있고 또 저런 표정도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리니 오늘은 그저 마음껏 멋지고 아름다운 경관이나 탐승하자. (2012.3.31.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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