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사흘, 그 사흘

거북이3 2006. 11. 18. 23:49
 

   사흘, 그 사흘               

                                                    이   웅   재         


 수필문학추천작가회의 2006 연차대회가 경주에서 있었다.

 11월 4일. 날씨가 추워질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 때문에 가을이 막바지인데도 버스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대야만 했다.

 금년의 계절은 걸음이 무척 더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었다. 음력으로는 윤달까지 있었고, 그 윤달이 지난 후에 추석이 어슬렁거리며 찾아왔는데도 날씨는 계속 더웠던 것이다. 11월이 되어서야 수줍은 듯 제법 가을다운 날씨들이 빠꼼히 빠꼼히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계절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찾아왔다.

 이제, 가을이었다. 가을이면, 난, 늘 아팠다.

 그래, 난 지금도 아프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싸아하니 느껴지는 아픔. 그런데, 이상하다. 그 아픔은 또 아픔으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가슴이 텅 비어지는 허허로움이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었다. 그것은 한 팔, 아니 한 다리, 아니 허파 하나, 아니 아니, 뇌수 하나를 도려낸 아픔이다. 그 상실감, 나는 그 상실감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또 한편, 무언가가 뿌듯하게 채워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가을은 내게 아리아리하게 가슴이 저려오는 계절이면서도 또한 충만한 희열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계절인 것이다.

 경주 시내의 가로수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내 마음의 밑바닥도 함께 끝없는 심연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내 몸은 저절로 부상하여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고 있었다.

 언제 이런 감정을 가져 보았던가? 사춘기를 느껴보지 못했던 터수라서 대신 사추기를 앓게 되는 것일까?

 아니, 누가 들으면 웃겠다. 이미 과년(瓜年)이 넘은 나이인데…. 과년, ‘瓜’자에 ‘八’자가 둘이 있어서 8+8=16, 8×8=64를 의미하는 나이. 여자는 16살, 여자구실을 하기 시작하는 때요, 남자는 64세, 이제 남자구실을 접을 때라고 하지 않았던가?

 첫날은 그렇게 가을이었다.

 11월 5일. 오늘은 가을과 겨울이 바통 터치를 하는 날이었다. 오전 중에는 동리․ 목월 문학관을 찾았다. 그 앞쪽의 ‘아사달의 혼’ 조상(彫像)은 그래, 가을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입맞춤은, 아무리 보아도 열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건 여름이 아니었다. 그들의 입맞춤은 가을,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봄의 입맞춤은 감미로움을 선사한다. 여름의 입맞춤은 정열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 가을의 입맞춤은? 그것은 잊히지 않는 한 폭의 추억을 그려내 주는 그림과도 같은 것일 게다. 그리고 그 추억에는 아련한 아픔이 함께한다. 그러면서도 충만하다. 아픔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겐 충만함이 찾아오지 않는다. 성숙은 아픔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그 딱지도 단단하다. 그 단단한 딱지는 성급하게 떼어내면 안 된다. 그러면 피가 날 수밖에는 없다. 가려워도 긁지 말고, 손이 가려해도 참아야 한다. 참을 수 없는 자에겐 사랑이 찾아올 수 없다. 단단한 딱지가 저절로 떨어지고 여린 새살이 밖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게 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 사랑은 그렇게 참을성을 요구한다.

 박물관 가는 길에는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의 표지가 보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여권의 상징이랄 수 있는 여왕릉을 나는 한 번도 참배하지 못했다.

 진평왕의 장녀가 선덕여왕, 차녀는 태종무열왕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으로 여겨지고, 그 3녀는 선화공주가 아니던가? 맛동이와 열렬한 연애를 했던 선화공주도 매력적이지만, 지기삼사(知機三事)로 유명한 선덕여왕릉에 들러 쐬주 한 잔 뿌려주고픈 마음은 늘 간절했었다.

 시정잡배들을 대하기 싫어 산등성이 도리천(忉利天)에 묻힌 여왕이라서 그럴까? 그러나 이미 무덤 속에 들어간 지 천년이 훨씬 넘는데, 이제는 속인들과 함께 일배주라도 하고 싶으시지는 않을는지? 아직도 술꾼 거북이에게 일잔을 따를 기회를 주지 않으시니 섭합니다, 섭해요.

 선덕여왕릉 대신 대릉원(大陵苑)엘 들러 천마총(天馬塚)을 비롯한 여러 왕릉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덕여왕을 흠모하는 마음을 참람(僭濫)되게 여겼을까? 느닷없이 소나기가 퍼붓는 것이었다. 아니, 그건 소나기가 아니라 우박이었다. 그리고 그 우박을 맞으며 서 있는 누드 목(木)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토록 홀딱 벗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석 달 열흘 동안의 화려함은 뽐내었던 배롱나무의 안쓰러운 모습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아, 그렇다. 그 배롱나무의 누드 때문일 것이었다. 천마총을 지나서 가는 곳에 있는 왕릉들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능과 능이 맞붙어 있는 모습, 그건 외람된 말씀으로, 매우 성적(性的)이었다. 잘 다듬어진 잔디로 뒤덮여 있는 두 개의 구릉, 정말로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그건 거대한 여인의 둔부였다. 둔부, 둔부였다!

 빗발이 세차게 쏟아지면서 심하게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있었다. 나의 외람된 생각을 힐책하는 대릉원의 조처가 아닐까 싶었다.

 문학기행은 끝났다. 그에 따라 나의 계절도 1년의 마지막 계절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11월 6일. 출근하고 있노라니,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윈도우 브러시를 열심히 작동시키면서 바라보니, 아, 그건 비가 아니었다. 그건 눈이었다. 눈, 눈, 이제 겨울이 온 것이다.

 내가 보낸 사흘, 그 사흘은 비록 짧은 사흘이었지만 여름, 가을, 겨울의 세 계절을 대표하는 사흘이었다. 여름, 가을, 겨울이 이처럼 의좋게 함께하고 있는 경우를 나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

 사흘, 그 사흘은 내게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전후에 봄이 낄 자리가 없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그 봄은 어떤 외로운 여인 하나가 몽땅 매절(買切)해 버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