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 2박3일 여행 시 먹고 살기
이 웅 재
마님께서 2박3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신단다. 걱정이 태산 같다. 그 동안 어떻게 먹고 사나? 수염이 대자라도 먹어야 산다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기초적인 생명 유지의 방법인 먹고 사는 문제를 혼자 손으로 해결할 수 없다니, 나를 비롯해서 우리 삼식이 님들, 모두가 참으로 한심(寒心)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아, 그런데 다행이었다. 울 마님께서 그 긴긴 세월의 ‘2박3일’ 동안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음식들을 황공하옵게도 모두 손수 장만을 하시어, 냉장고의 칸칸마다 정성스레 넣어두셨다는 것이다. 무엇은 어디에, 무엇은 또 어디에…심지어는 식후의 디저트용으로 수박, 참외 썰어 놓은 것을 비롯해서 복숭아 씻어 놓은 것, 아이스크림 얼려 만들어 놓은 것 등등을 일일이 설명을 해 주시는데, 그걸 수첩에 받아 적어 놓기라도 할 걸, 알량한 기억력만 믿고 다 알았으니 염려 말라고 큰소리만 떵떵 쳤것다?
게다가 그 몹쓸 놈의 ‘대상포진’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도 그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몸이 쇠약해져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걸린다는 병, 체력 보강이 안 되면 나은 듯했다가도 다시 아파진다는 병, 그래서 나는 죽고 싶도록 아픈 중에서도 아구아구 먹어댔던 것이다. 그래서 ‘아랫배마저 볼록하게 나오게 된’ 처지인데도(나는 사실 그런 식으로 무식하게 말하는 걸 싫어해서 점잖게 ‘인격이 나온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무슨 ‘웬쑤’나 진 듯이 계속해서 ‘먹고 또 먹고’ 하며 ‘주둥이’란 작자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아니다. 그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그렇다, 그 알량한 기억력만 믿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마님의 여행 기간 2박3일을 ‘1박2일’이라고 제멋대로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던 것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동해안 피서를 간다기에 응당 ‘1박2일’로 알았던 것이다. 평소에 별로 그런 일이 없었던 터라, 무슨 ‘2박3일’까지나, 하고 지레짐작으로 그냥 ‘1박2일’로 쉽게 입력을 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울 마님, 손도 크지, 하면서 예의 그 ‘아구아구’ 먹기를 계속하였었다. 매끼 음식물을 꺼내 먹을 적마다 넉넉하군, 넉넉해, 넉넉할 뿐만 아니라, 남아돌 것만 같아서 ‘아구아구 + 아구아구’ 먹었었다. 오래간만에 울 마님, 정말로 고마운 사람이로다! 하는 감탄사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1박2일’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준비해 놓은 음식물은 널널하게 다 먹어 없앴다. 그리고는 마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데 마님은 돌아오질 않았다. 밤 9시, 10시, 11시…나는 그때,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11시 반, 12시…. 런던 올림픽 덕분에 12시가 넘도록 기다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12시 반으로 마구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손전화를 들었다. 직접 통화는 마님 친구분들에게 체면이 좀 안 서는 것 같았다. 사내놈이 진득하지 못하고 웬 전화질인고? 그네들 ‘수다’의 씹을수록 맛갈진 주제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점잖게 문자를 넣었다. “어디야?”
그게 잘못이었다. ‘2박3일’이라고 골백번을 얘기했는데, 남 신나게 자고 있는데, “어디야?”가 뭐 말라빠진 뼈다귀냔 거였다. 번갯불 같은 두뇌 회전에 성공한 나는, 지금 자고 있는 곳이 어디냐는 거였다고 말머리를 재빨리 돌려 버렸다. 간신히 사태를 수습하고 난 나는, 고민에 빠져 버리고야 말았다. ‘2박3일’을 ‘1박2일’로 치부하고서 ‘아구아구 + 아구아구’ 먹어버리고 말았던 것이, 최대의 현안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밥이야 그럭저럭 할 수가 있겠는데 반찬이 문제였다. 김치 하나만 먹고 지낸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체면이 있지 집지킴이의 거룩한 사명을 안고 있는 삼식이로서, 그렇게 초라한 식사를, 그것도 세 끼씩이나 먹고 지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무슨 요리(?)를 할까 고민고민 끝에 감자튀김을 해 먹기로 하고 그날 저녁은 세상모르고 잤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보니, 웬걸? 싱크대며 냉장고며 앞 베란다의 찬장 여기저기를 다 뒤져 보아도 도대체 요리 재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감자를 2박스씩이나 사다 놓은 지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할 수 없이 오후에 하던 탄천 산책을 아침으로 돌렸다. 돌아 오는 길에 감자를 사 올 요량이었다.
마침 아파트 단지 내의 반짝시장에서 농산물 판매상들이 점포를 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감자 한 소쿠리에 4,000원을 주고 사다 보니, 홍당무가 눈에 띄었다. 한 봉지에 1,000원이었다. 도합 5,000원어치를 사 가지고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다. 우선 홍당무 1개와 감자 2개를 꺼내어, 감자 깎는 칼로 껍질을 벗겨내는데, 마나님이 할 때에는 아주 쉬워 보였는데, 웬걸,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럭저럭 껍질을 벗긴 다음에는 부엌칼로 잘게 써는데, 크고 작고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찬란(?)하였다. 조금 제대로 썰려고 마음먹고 썰었더니, 이크, 이번에는 손가락을 벨 뻔하였다. 울마님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럭저럭 요리 준비 끝, 홍당무는 반 개만 넣고 반 개는 날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손수 하는 요리의 덤이렷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가열시킨 다음, 조금 있다가 감자와 홍당무 썬 것을 집어넣었다. 조금 있다 생각하니, 옳거니, 양파를 빠뜨렸군. 불을 끄고 양파를 썰어 집어넣고, 양파 때문에 연상된 파, 소금 등을 넣었다. 붉은 고추는 찾아도 못 찾겠기에 과감히 생략하였다.
오래간만에 손수 요리를 해서 먹는다는 마음에 스스로 대견해서 그만 너무 많이 먹고 있었다. 안 된다. 아껴야 한다.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 먹노라, 대상포진으로 어깨 아픈 것도 잠깐 잊었다. 그렇다, 바쁜 사람은 아플 새도 없는 거다. 아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다. ‘역지사지’라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인가?
울마님, 빨리 오소서! 와서 맛있는 반찬 만들어 우리 같이 맛있게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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