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직한 남편 되기 5
이 웅 재
나는 어려서부터 예체능 계통 쪽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여기서 예체능이란 초등학교에서 말하는 예체능, 그러니까 음악, 미술, 체육을 가리키는 말이다.
음악이야 어른이 된 지금도 ‘노래방에만 가면 주눅 드는 남자’라는 글을 쓸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하기는 그러한 나도 고등학교 시절 한때 합창단에 끼였던 적이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긴 하다. 그것도 내가 자원해서 된 것이 아니요, 음악 선생님께서 특별히 차출해서 들어갔고, 당연히 음악 점수는 95점이 넘게 나왔었다고 기억된다. 요는 내가 내는 음정이 특이하다는 것이었다. 낮은 음은 너무 낮고 높은 음은 너무 높아서, 나는 그 중간의 음을 선호했던 것인데, 그런 특이한 음을 내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합창에서의 독특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곡이 하나 있다. 합창단의 공연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관계로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진 곡, 그것은 김동진 편곡의 ‘가로수’라는 곡이었다.
미술은 어떤가? 사실 그림을 못 그렸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색감이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적색과 녹색을 구별할 줄 안다. 문제는 그 두 가지의 경계선 부근에 있는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적록색약이라는 것이다.
가끔 신문 따위에 색맹이나 색약의 치료를 한다는 광고를 본 일이 있다. 그러나 나는 운전면허 시험에도 거뜬히 합격한 처지이고 보니, 치료를 받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치료는 의외로 간단할 수가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백열전등 불빛 아래에서는 그렇게 선명히 구분될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단언컨대, 그때의 두 가지 빛깔의 차이는 색맹이나 색약이 아닌 사람들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가 그 원리를 이용하여 적록색맹이나 색약자를 위한 안경을 만든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체육을 말할 차례다. 이것은 예체능 가운데서도 내게는 가장 취약한 부문이었다. 요새는 체중 72kg으로 비만의 초입에 놓여 있지만, 담배를 끊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정한 체중 65kg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50줄에 들어서였고 40대까지는 55kg도 못 되었다. 젊었을 때는 더욱 갈비였고, 어린 나이로 내려갈수록 더더욱 얇았었다. 한때의 별명이 ‘빗 사이로 막가’였으니까.
해서 내 소원은 살 좀 찌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 나 자신의 절실한 소원이었다. ‘제발 살 좀 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말이다. 국보적인 갈비를 보이기 싫어, 거의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그때의 내 생각) 체육복 입는 것을 극도로 기피했으니, 냉갈비를 면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물 건너가고 말았었다.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하지만, 이건 ‘믿음직한 남편되기 5’를 위해선 필수적인 선행지식이라서 장황하게 자판을 두들겨 보았다. 여기서 아주 비밀스러운 얘기를 당신에게만 밝힌다.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당신만 알아두세요. 우리집 내무대신께선 나와 똑같이 ‘노래’ 하면 두 팔을 들어 버립니다요. 하지만, 미술 쪽에는 지금 보아도 특출한 재능이 느껴진다구요. 그리고 체육 쪽으로는 더욱 한가락 했었답니다. 중․고교 시절엔 배구 선수였을 뿐 아니라, 무슨 행사가 있을 때엔 기수 노릇도 했다니까 대충은 알 만도 하지요. 요즈음은 수영장엔 다니고 있는데, 나이 치고는 상당히 잘 하고 있는 편이랍니다.”
참, 어쩌다 팔불출까지도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건 모두 바람잡이 얘기일 뿐이다. 말하자면, ‘믿음직한 남편 되기 5’를 위한 전주곡이라는 말이다.
내 ‘믿음직한 남편 되기 5’는 바로 이 ‘체육’과 관련된다. 앞에서도 비슷하게 언급했지만, 내 몸무게는 결혼할 때까지만 하여도 55kg 내외. 먹어도먹어도 살이 찔까 말까인데, 입마저 짧았다. 결혼을 하면 살이 찐다지만, 그건 내겐 전혀 ‘해당 사항 무’의 낭설일 뿐이었다. 해서 나는,
“사람의 몸 중에서 살이란 것은 자연 상태에서의 뼈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자연 재해로 인한 뼈대의 손상을 막아줄 수 있는 살의 필요성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교통사고에 의한 뼈대의 부러짐 따위는 살이 있으나마나한 일, 그러니까 살을 최소한도로 줄여버린 모습이 진화된 인간의 모습이다.”
라는 일종의 궤변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아침 출근 전의 1시간~1시간 반의 시간을 할애한 운동을 말이다. 그건 사실 내 아내가 볼 때에는 놀랄 만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왜? 나는 지독한 늦잠꾸러기였으니까. 출근 시간이 다 되어서 깨워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녹음기처럼 뱉어대던 나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더니, 느닷없이 아침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 그것은 죠깅이 아니었다. 그건 달리기였다. 성산동의 모래내 다리 부근에서부터 연희동 연세대학교 뒷산까지의 장거리 달리기였다. 등에는 배낭을 메었고, 그 배낭 속에는 수건과 플라스틱 세숫대야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냉수마찰을 위한 도구였다.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하루도 빠짐없는 달리기와 냉수마찰, 평생 운동을 모르고 지내던 사람치고는 어쩌면 과격한 운동일 수도 있는 그 일을, 나는 어느 날 아침에 시작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계속했던 것이다.
아내가 놀란 것은 당연지사, 그것은 요즈음 40년이 넘게 피우던 담배를, 아내의 끊임없는 지청구에도 꿈쩍 않고 피우던 담배를, 어느 날 갑자기 끊어 버렸을 때 느끼게 된 놀라움이나 비슷했을 것이다. 그 놀라움은 기실, 한번 한다면 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일, 그것으로서 나는 또 하나의 ‘믿음직한 남편 되기’를 수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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