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직한 남편 되기

믿음직한 남편 되기 4

거북이3 2006. 3. 17. 20:05
 

   믿음직한 남편 되기 4

                                                               이  웅  재

 '믿음직한 남편 되기’, 그거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더욱이 아이가 셋이나 되다 보니까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구요. 내가 자랄 땐, 그냥 밥만 먹여주고, 의무교육인 초등학교까지만 보내주면 ‘부모의 임무 끝’이었는데, 세상은 엄청 변해 있더라구요.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는 보행기란 놈이 필요하더니,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니까 또 유모차를 장만해야 했습니다. 그런 건 보통 첫째아이 것을 둘째아이가, 그리고 이어서 셋째아이가 물려받아 사용하면 되는 것인데, 우리 집의 경우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둘째와 셋째가 동시에 필요한 경우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둘째와 셋째가 쌍둥이였다는 말입니다. 남들 같으면 한 대면 될 보행기를 두 대씩이나 사느라 허리가 휘어졌는데, 유모차의 경우엔 차라리 허리가 부러지더라도 한 대 더 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습니다. 하지만, 유모차를 두 대씩 밀고 다닐 순 없지 않겠습니까? 요새 같으면야 두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유모차도 판매되고 있으니 아주 간단히 해결될 일, 그러나 70년대 중반엔 사정이 그렇질 못해서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답니다.

 아이들이 칭얼대기 시작합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장자장’이라든가 보행기에 태운다든가 하는 일이 무용지물이라는 거, 모두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보행기, 그건 이제 유치하다는 거죠. 버젓이 걸을 수 있는데, 보행기라니? 그러한 아이들의 심리를 모른다면, 그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자격이 F라는 것을 의미하는 일, 더 이상 언급불요(言及不要)입니다. 그들은 이제 보행기가 아닌 유모차 타기를 원한답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기르려면 유모차가 없어서는 곤란하겠지요?

 아이들이 칭얼댑니다. 밖으로 나가자는 거지요. 시원스레 바깥바람 쐬자는 얘기인데, 그거, 정말, 옳은 얘기지요. 나 자신도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처박혀 있느니, 아쉬운 대로, 자유, 자유스럽게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어른도 그런 판국인데, 아이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나갔죠. 나갔습니다. 나가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 문제의 단초(端初)였습니다.

 쌍둥이, 누구를 편애해선 안 되겠지요? 그러니까 항상 공평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순서는 있을 수밖에 없어서, 큰놈부터 태웠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우는 겁니다. 둘째 놈이….아니, 따진다면 둘째가 아니라, 셋째 놈이죠. 놈들보다 두 살이 위인 맏딸이 첫째이니까요.

 “으아앙! 아빠! 나, 더거 탈래.”

 정말로 난감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어떡합니까? 유모차는 하나, 애는 둘인데요.

 “올 때는 너 태워 줄게.”

 계산상으로야 그렇게 하면 공평하겠지만, 그런 ‘공평’이 무슨 소용입니까? 아이들은 아직 ‘기다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데 말입니다. 때로는 가슴 설레고, 때로는 기대감에 충만해 있고, 또 때로는 호기심을 증폭시키기도 하는 ‘기다림’이지만, 우리 쌍둥이는 그런 기다림의 효용가치를 알 수 있는 나이가 못 되는 것입니다.

 “시어(싫어), 시어! 나, 더거 탈래.”

 막무가내입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야만 하겠습니다. 천상 업어줄 수밖에는 없겠는데, 아이 업고 유모차 밀고, 그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모차 외출은 엄마 아빠가 같이 나가야지만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따라서 함께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때가 문제였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2인용 유모차를 사면 될  것 아니냐구요? 내 참, 아까도 그 얘기 했는데, 또 딴죽걸기예요? 그 당시에는 2인용 유모차가 생산이 되질 않았다구요.

 어쨌든, 도저히 안 되겠어서 특단의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짬을 내서 빈 유모차를 끌고 나갔습니다. 목공소로 간 거죠. 거기서 유모차의 뒤쪽에 널빤지를 대어서 어린아이 둘이 올라설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올라서면 마치 군 지휘자가 무개차에 올라서서 사열을 하듯이, 의젓하게 서서 지낼 수가 있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고 둘이 올라설 수 있게 만든 것은 왜냐구요? 쌍둥이도 쌍둥이지만, 두 살 위인 딸내미도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데, 아예 함께 태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궁하면 통하는 법 아닌가요? 이만하면 쓸 만한 아빠 아닙니까? 아내에게는 믿음직한 남편이구요.

 자아, 떠나자. 동해바다로! 아니, 아니, 동해바다는 아니구, 모래내 개울가로. 그땐 성산동에 살 때였거든요. 개울가를 따라서 난 길을 3인용 유모차가 행차하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했답니다.

 “우로 봤!”

하는 구령 소리가 없어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니 얼마나 멋진 무개 사열차입니까? 쌍둥이뿐만이 아니라, 그 누나까지도 함께 사열자로 점지되었으니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삽시간에 우리 3인용 무개 유모차는 동네의 명물이 되어 버렸답니다. 나는 이 차를 ‘지차로 한아차’라 명명하고, 그걸 차의 맨 앞부분에 ‘가로 20cm × 세로 5cm’ 정도의 흰 나무판에 파아란 글씨로 써서 붙쳤습니다.

 맏딸 이름 한아(←하나), 맏아들 이름 지로(←Zero←0), 둘째아들 이름 차로(‘버금 차’로 대용 가능한 ‘차(佽)’ 자를 사용하여)를 의미하는 거였지요. 그리고 유모차의 넘버는 102번으로 해서 차의 뒤쪽에 붙쳤습니다. 하나(1), 지로(0), 차로(버금: 2)이라는 의미였지요. 이 102호차는 동네 아이들의 선망의 차가 되기도 해서, 그걸 한 번만이라도 타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줄을 늘어서는 바람에, 아내는, 102호차의 운행을 동네 아줌마에게 위임을 하여도 되었습니다. 아이들 이름과 관련된 내용은 꼭지를 달리 하여 써볼 생각입니다.

  ‘믿음직한 남편 되기’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랍니다. 남편 분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곧 ‘믿음직한 남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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