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31] 서양등골나물

거북이3 2014. 2. 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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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제방(百花齊放) 31] 서양등골나물

 

                                                                                                                                   이 웅 재

 

11월 ×일. 4목회 나들이날이다. 비교적 쌀쌀한 날씨이기는 했지만, 일행 5명이 성대 후문 쪽 와룡공원을 거쳐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 부근까지 갔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이처럼 서울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을 갖춘 곳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자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등성이에는 레이다 망이나 대공 고사포들이 군데군데 하늘을 향하여 포신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였다. 아, 저렇게 서울시는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구나 하고 느끼니, 자랑스럽던 마음이 금세 뿌듯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벅차오르는 감정에 찬물을 끼얹는 풍경 하나가 갑자기 내 시야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곽 아래쪽에 말라비틀어진 서양등골나물의 군락이었다.

원래 등골나물은 꽃이 등나무 색을 띠고 있으며 반쯤 말리면 등꽃 향기가 나서, 또는 잎의 가운데 갈라진 잎맥에 등골처럼 고랑이 있어서 등골나물이라 한다고 한다. 전체에 가는 털이 있고 줄기는 곧게 서며 위로 갈수록 잎이 더 길어지고 좁아지며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날카롭게 나 있다. 꽃은 수평으로 하나의 평면을 이루며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이며 독성이 없다. 다른 명칭으로는 천금화(千金花), 연미초(燕尾草), 향초(香草), 패란(佩蘭) 등의 예쁜 이름들이 있다. 줄기가 질겨서 예전에는 비녀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글쎄, 비녀 대신 써도 될까 말까 망설여서 그랬는지 꽃말은 주저(躊躇) 또는 지각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등골나물(또는 미국 등골나물)이었다. 원산지는 북미대륙, 그 뿌리의 생김새가 흰 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서양에서는 White snakeroot라고 하는데, 우리말로서도 사근초(蛇根草)라 불리는 외래종이다. 보통 외래식물들은 양지식물이어서 숲속에까지는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 서양등골나무는 음지에서도 잘 견디는 성질이 있어 숲속으로도 쉽게 파고 들어가서 우리 토종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생김새는 우리 자생 등골나물과 매우 비슷하지만, 망초에 대한 개망초와 같이 키가 더 작고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며 자생 등골나물의 연분홍 꽃에 비하여 자잘한 하얀 꽃을 피우는 놈이다.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마치 눈이라도 온 듯 주위를 온통 하얗게 만들어 버리는데다가 겉으로 보아서는 꽃의 생김새도 비교적 예쁜 모습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 고약한 품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토종 등골나물과는 달리 독성이 있어서 젖소가 뜯어먹으면 근육경련이나 변비에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죽기까지도 한다. 게다가 이 풀에 감염된 젖소의 우유를 사람이 직접 마시게 되면 두통이나 메스꺼움이 생길 수도 있다.

1978년 남산 일대에서 처음 발견된 이 서양등골나물은 용산 주둔 미8군을 통해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는 풀로서 처음에는 서울 남산과 워커힐 등 제한된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북한산, 남한산 등을 비롯해서 성남시·광주시·하남시 등 경기도 일대에까지도 널리 분포되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어 하루빨리 퇴출시켜야 할 품종이다.

모든 생물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다각도의 피눈물 나는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동물들의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잡아먹고 잡혀먹히는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지만, 식물들의 경우, 겉으로 보아서는 그와 같은 살벌함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도 동물에 못지않게 살아남기 위한 피눈물 나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들이 단순히 양분이나 물, 햇빛을 놓고 다투는 ‘자원경쟁’을 넘어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뿌리나 줄기, 잎 등에서 이웃해 있는 다른 식물들(다른 종뿐만이 아니고 같은 종의 경우에도)의 생장이나 발육, 번식을 억제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해로운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이를 타감물질(他感物質)이라고 하고 이러한 현상을 알레로파시(allelopathy: 타감작용)라고 한다. ‘alle’는 그리스 어로 ‘서로’ 또는 상호(相互)’, ‘pathy’는 ‘해로운(harm)’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것은 ‘스컹크’가 내뿜는 악취 나는 화학물질과 다르지 않다.

허브(herb)나 제라늄(geranium)과 같은 화초의 방향은 이러한 타감물질의 한 종류인 것이다. 모든 식물들은 이러한 타감물질을 분비하고 있다. 어느 식물이든 자기방어 물질을 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꼭 해로운 물질만을 방출하는 것은 아니다. 콩과식물 중에는 항상 진딧물이 들끓는 놈이 있다. 식물이 진딧물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메뚜기 떼가 달려들어 못살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진딧물의 분비물을 먹기 위하여 개미가 몰려들면 메뚜기들은 자동적으로 퇴치가 된다는 것을 이 콩과식물은 알고 있는 것이다. 마늘의 항균성 물질인 알리신(allicin)도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한 타감물질이요, 소나무 아래 다른 나무나 풀이 자라지 못하는 것이나 토마토 밭에 질경이가 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타감작용 때문이다.

근래에 삼림욕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이라고 한다. 피톤치드란 ‘식물’(Phyton)과 ‘죽이다’(Cide)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서 자기 방어를 위해서 공기 중에 내뿜는 살균성 물질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그것이 사람의 몸에는 많은 이로움을 준다는 말이다.

서양 등골나물은 타감물질 중에서도 페놀(phenol)을 가장 많이 방출하여 자생종의 성장을 방해하는 외래종이라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2012.11.26. 원고지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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