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스크랩] (서유럽 문화 체험기 11) 앵그르 작 ‘그랑 오달리스크’의 관능미

거북이3 2016. 1. 19. 19:44

    

첨부파일 서유럽 문화 체험기 11. 앵그르 작 ‘그랑 오달리스크’의 관능미.hwp

 


     (서유럽 문화 체험기 11)
                 앵그르 작 ‘그랑 오달리스크’의 관능미
                                                                                            이   웅   재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그림은 100여 명의 인물이 등신상으로 그려져서 어마어마하게 큰 대작이라 하였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610×931㎝에 달한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큰 작품이 있었다. 10m에 가까운 대작인데, 루브르박물관의 회화작품 중에서는 가장 큰 작품으로, 등장인물 수도 더 많은데다가 발표연대로 보아서도 더 빠른 작품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행한 최초의 기적 이야기를 그렸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는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킨 내용을 그린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의 ‘가나(Cana)의 혼인잔치’가 그것이다.
  ‘에로스(Eros)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Psyche)’에서는 프시케의 둥두렷한 유방의 아름다움과 그에 못지않은 에로스의 부드러운 궁둥이가 관람자들의 시선을 꼬옥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는데, 에로스는 그러한 관객들로부터 벗어나 프시케를 안고 하늘로 날아올라갈 듯 V자로 날개를 펴고 있었다. 그랬다. 에로스는 우리 관객들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프시케의 유방보다 에로스의 궁둥이가 더 관능적으로 여겨졌다. 사내놈의 궁둥이가 어쩌면 그토록 부드러운 곡선미를 지녔는지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추스르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사진은 내 손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 에로스는 프시케를 안고 하늘나라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대신 프랑스 혁명 당시의 정신적 상징성을 띤 작품이라고 보이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을 소개한다. 그녀도 유방을 드러내고 있었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먹고 자라면서 만지작거렸던 그 우윳빛 살덩이, 그것은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보다도 더욱 민중을 선동하고 있었다. 민중은 그녀의 선동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관능보다도 더욱 관능적인 작품이 내 시선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앵그르(Ingres)의 ‘그랑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다. 원래 ‘오달리스크’란 터키어 오달릭(Odalik)에서 온 말로 황제의 시중을 드는 여자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유럽인들은 할렘(Harlem: 빈민가)의 여자들을 총칭해 오달리스크라고 불렀다. 상층 귀족들의 위선적이고도 도도한 자세의 마담들보다는 할렘의 여인들이 훨씬 사내들의 마음을 쉽게 휘어잡을 수가 있어서였을까? 이 그림의 허리를 보자. 상당히 길다. 유방보다도 그녀의 허리에서 느껴지는 관능미가 더욱 도드라진다. 게다가 엉덩이 또한 더할 수 없이 풍만하다. 얼굴도 뒤쪽을 돌아보고 있다기보다는 정면에서 약간만 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뇌쇄적인 모습이다. 팔도 실제의 길이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만일 그 팔이 짤막했다면 해부학적인 길이보다 훨씬 길어진 관능적인 허리에 커다란 흠이 되었을 것이다. 그 손은 당장이라도 커튼을 잡아당겨 자신의 나신을 감추어버릴 듯한 순간을 보여주어서 더욱 조바심을 느끼도록 만드는 수법까지도 동원하였다.
  이와는 상대적인 느낌을 부각시키는 작품에 제리코(Géricault)의  ‘메두사의 뗏목(Raft of Medusa)’이 있다.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할 목적으로 거대한 군함을 대서양에 띄웠는데, 문제는 25년 간 배를 탄 적이 없는 퇴역이 뇌물을 주고 메두사 호의 함장 자리를 꿰어 찼다는 데 있었다. 그는 배가 암초에 부딪쳐 좌초되었을 때, 400여 명의 승객들보다도 제일 먼저 구명정에 올라 도망친다. 뗏목에서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의 옆에는 시체들도 보인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렸다는 이 작품은 의도적인 무질서가 두드러진다. 최종적으로 15명이 생존했다는데 그들은 인육(人肉)마저 먹으면서 버텼다고 한다. 그나마도 5명은 얼마 후 유명을 달리하였고. 이 작품이 눈길을 끈 것은 이 작품과는 거의 판박이로 여겨지는 ‘세월호 참사’ 때문이라고 하겠다. 분명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도 없다. 그런 비극은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죽어가는 노예’와 ‘반항하는 노예’에는 특별히 ‘사진촬영 금지’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죽어가는 노예’는 아예 체념해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노예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마음을 먹어서일까? 얼굴이 편안한 모습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근육질의 노예, 상의는 걷어 올리고 하의는 실종이라서 남성의 심벌이 힘차게 요동친다. 혹시 사진촬영 금지의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해 본다.
  루브르박물관에서는 46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전시되는 작품은 3만 5천 작품에 불과하다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몇몇 작품만 관심을 가지고 보았을 뿐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저 거기 그렇게 있겠거니 하고 지나쳐 버리고 말았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보니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보인다. IS 테러 때문인 모양이다. 그때만 해도 ‘웬 소란?’이라는 생각이었다.
  ‘한심한’ 사람도 먹어야 산다. 안복(眼福)을 누렸으니 이제는 ‘복복(腹福)?’을 누릴 차례, 아니 그런 말은 없으니 ‘식복(食福)’을 누릴 차례다.   (16.1.19. 15매)





 

 

 

 










 

 

 

 

출처 : 이음새 문학
글쓴이 : 거북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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