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14. 에펠탑 위의 에펠탑과 에펠탑 아래의 에펠탑.hwp
(서유럽 문화 체험기 14)
에펠탑 위의 에펠탑과 에펠탑 아래의 에펠탑
이 웅 재
우리는 식후경(食後景)의 에펠탑(Tour Eiffel)을 보기 위하여 저녁을 먹었다. 한식이었다. 가이드가 말한다.
“밥 더 드시는 것은 제가 다 낼게요.”
그래? 누군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으로 그 말에 꼬리를 달았다.
“좋았어, 우리가 시집 보내줄게.”
현지 가이드 ‘마담 킴’이 끼어들었다.
“시집 가 보지 못한 사람은 왜 시집을 가느냐고 하더라구, 하지만 못 가 본 사람은 가 보아야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인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저녁을 먹고 에펠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을 지나는데 지저분하기 그지없는데다가 거기에는 ‘성님’도 있었다. 역무원들도 그들 노숙자를 쫓아내다 지쳤고, 그래서 그곳은 한밤이면 거지들의 왕국이 되어 버린단다. 에펠탑 앞쪽 시계가 있는 건물은 나폴레옹이 다니던 “왕립군사학교”라는데 왠지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에펠탑을 만났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만국박람회 개최 때 공모 작으로 당선되어서 세운 철탑이다. 알렉상드르 구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이 건설한 이 철골 구조의 탑은 높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이용하여 만든 탑이다. 공사기간 중 단 1건의 안전사고도 없었다는 것이 자랑거리란다. 그러나 처음 건설할 때에는 철골 구조물이 파리의 고풍스런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많은 예술가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소설가 모파상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탑이 완공된 후, 그가 늘 점심을 이 탑 안의 식당에서 먹곤 하기에, 사람들이 왜 그런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이냐 물었더니, 그곳이 파리에서는 유일하게 그 탑을 볼 수 없는 곳인 때문이라고 했단다.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비용의 대부분은 에펠이 내고 대신 20년간의 독점사용권을 따내었기에 에펠탑은 프랑스의 것도 아니고, 파리의 것도 아닌 에펠의 것이 되었고, 그는 유료 입장객을 받아서 1년 만에 그 투자액을 모두 뽑았다고 하니, 건축에만 천재가 아니요, 경영에도 귀재라고 하겠다.
탑은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지만, 간혹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1층에서 2층까지의 계단 수는 300계단. IMF 때 파리 여행을 갔던 막내아들 차로도 걸어서 올라가 보느라고 엄청 힘들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소매치기들도 입장료를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소매치기 주의(BEWARE OF PICKPOCKETS)’라는 경고문과 소매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원래는 20년간의 기간이 지나면 철거하기로 했었지만, 통신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계속 존치시키면서 텔레비전의 송신탑으로도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최고 명소가 되어서 다른 관광지에서의 적자를 이 에펠탑이 메워주고 있다니까 전화위복, 새옹지마의 살아있는 징표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저와 같은 관광 상품이 없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에펠탑은 사기꾼들에 의해 두 번이나 팔려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봉이 김선달’은 있는 모양이었다. 에펠탑이 에펠의 개인 소유였었다는 것을 이용한 교묘한 사기 술법이 아니었나 싶었다. 2층 전망대에서 사진들을 찍었다. 앞쪽으로는 다리가 있고, 그 너머에는 얼마 전 우리의 싸이가 공연하던 광장, 다시 그 저쪽으로 건물들이 보이는 곳은 신도시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한 번 멈추고 문이 열리기도 한다.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려올 때 그 중간에서 내리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은 아마도 다 내려온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치는 바람에 내리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수군수군하면서 하는 말들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웃게 해 주셔서.’
탑 위에서 에펠탑 모형의 기념품을 18유로를 주고 산 사람이 있었는데, 관광을 마치고 아래 광장으로 내려왔더니 같은 모형을 9유로에 팔고 있었다. 딱 2배의 차이가 났다. 기념품을 산 사람은 약이 올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에펠탑 위의 에펠탑과 에펠탑 아래의 에펠탑은 그렇게 달랐다. 그것은 사실 극히 정상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모든 존재는 그 있는 자리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펠탑이 에펠탑 안에 있을 때는 당연히 제자리를 찾아 존재하는 것이니까 비쌀 수가 있다. 그러나 에펠탑이 에펠탑을 벗어나 있는 것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상태이니까 값이 떨어질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것도 에펠탑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것이라서 아주 뚝 떨어진 곳에서의 가격보다는 비싼 축에 속할 것이다.
사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일,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에, 선생님은 선생님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자식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의 자리, 여당의 자리, 야당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도 다 각각 그 자리로서의 성격이 다르다. 제자리에 맞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고 값어치가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에펠탑 투어는 그렇게 끝났다. 8:30이었다. 그런데도 해가 지지 않았다. 6월 말쯤에는 11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지만 겨울에는 4시 반만 되면 ‘꼴까닥’ 한단다. 밤과 낮의 기온 변화도 심하기가 그지없고. 나는 또 한 번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실감했다. 이제는 센 강 야경을 보면서 또 하나의 파리를 체험할 시간이 되었다. (16.1.30.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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