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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문화 체험기5) 꼭두새벽에 만난 큰엉

거북이3 2017. 2. 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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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 문화 체험기5)

                꼭두새벽에 만난 큰엉

                                                                                                                                    이 웅 재

   뜨끈한 방에서 푹 자고 났더니 기분이 상쾌했다. 땀도 좀 났기에 샤워까지 하고 나니 온몸이 날아가기라도 할 듯 가뿐했다. 객실 창문을 통하여 바다 쪽을 내다보니 아직은 희뿌염한 모습이긴 하지만, 유럽의 어느 한 곳인 듯 소철과 야자수가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그렇게 바깥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아내와 며느리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식사가 준비되는 시간 동안 리조트 뒤쪽 해안가를 산책해 보려고 객실을 나섰다.

   바깥 공기는 시원했다. 그리고 또 상큼했다. 감기에라도 걸리면 안 되겠다 싶어 목토시를 끌어올려 귀와 코까지 덮은 채로 리조트에서 나왔다. 잔디 사이로 조성해 놓은 돌로 된 산책길을 따라 해변 가로 나가면서 보니,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꽃들이 화알짝 핀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리조트 바로 뒤쪽에는 한 길이 조금 넘는 동백나무 세 그루가 서로 시샘이라도 하듯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평소에 별로 보지 못하던 흰색 꽃을 피운 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제일 많은 것은 털머위였는데, 대부분은 꽃이 진 모습이었으나 더러 양지 바른 곳에서는 아직도 원추천인국[Rudbeckia] 비슷하게 생긴 싱싱한 꽃이 길쭉한 꽃대 끝에 달린 채로 나에게 ‘안녕!’ 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듯하였다. 털머위는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돌며 가죽처럼 두껍다. 주의할 점은 독초라는 점이다. 봄에 새로 피어나는 잎을 머위의 일종이니 나물로 먹어도 되겠거니 생각하다가는 큰코를 다친다.

   털머위에 뒤질세라 팔손이도 여기저기서 꽃대를 쑤욱 올리고, 꽃이라고 하기보다는 열매처럼 보이는 동글동글한 꽃들을 피우고서는 ‘날 좀 보소’ 하고, 용감하게 자태를 뽐내는 것이었다. 나중에 우리집 베란다에 있는 팔손이에게 “너는 왜 꽃도 피우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고 있는 거니?” 하고 약이라도 올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 나비가 활동을 멈춘 계절에 피어나는 팔손이는 그래야 할 비밀이라도 있는 것인지 꽃말도 ‘비밀’이란다. 벌이나 나비 대신 파리 종류에 의해서 꽃가루받이를 한다고 하였다. 이름은 팔손이지만 실제로 잎이 모두 여덟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어린잎은 대부분 7갈래 이하로 되어있고, 다 자란 놈은 오히려 9갈래로 갈라진 것들이 많다.

   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감국이 그 샛노란 얼굴로 방글방글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약과였다. 파란 잔디밭 한쪽 구석에서는 돌나물이 역시 노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겨울에 돌나물의 꽃을 볼 수가 있다니? 그래서 여기는 제주도다.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우거진 숲 사이로 산책로가 어서 오라고 한다. 올레5길이다. 바닷가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중에서도 ‘큰엉’이 단연 압권이었다. ‘큰엉’이란 제주도 사투리로 ‘큰 언덕’이라는 뜻이란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바다를 집어 삼킬 듯이 입을 벌리고 있는 언덕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인데, 이곳에는 그러한 곳들이 여럿 있었다. 큰엉의 군데군데에는 ‘추락금지’라는 팻말들이 보였다. 그만큼 큰엉들은 대개가 낭떠러지로 되어 있었다. 그 바위들의 군데군데에는 또한 해국이 ‘나도 여기 있소!’ 하는 듯 배시시 웃으면서 반겨주었고, 어쩌다가 제비꽃도 바위 틈서리에서 어렵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제비꽃이 필 무렵이면 먹을 것이 귀해져서 중국 오랑캐들이 침입해 와서 노략질을 해 갔다고 해서 오랑캐꽃이라고 했다지만, 요즘에야 그런 각박한 세상살이와 연관된 꽃 이야기는 이미 구닥다리가 되었으니, 병아리꽃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그러나 이런 추위를 감내하고 피어 있는 모습에서는 아무래도 그 이름처럼 앙증맞은 느낌보다는 애처로운 느낌이 들어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보리수나무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평소 집 근처에서 보던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여기서 만난 보리수나무는 나무라기보다는 덩굴성식물로 불리는 것이 제격이지 싶었다. 특히 바다쪽 낭떠러지 끝부분에 있는 보리수덩굴은 바다가 그리운지 바다를 향해 허공으로 낚싯줄을 던지듯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온 몸을 던지고 있었다. 가을이었다면 산수유를 닮은 그 빨간 열매가 마치 낚싯밥(미끼)처럼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흔히 석가는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태어났고,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사라수(沙羅樹) 아래에서 열반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 보리수는 이 보리수가 아니란 점이다. 그 보리수는 인도보리수요,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이 보리수는 기실 ‘보리장나무’라고 하는 놈이다.

   ‘큰엉’에 대한 설명문을 음각해 놓은 바위 근처에서 딸과 사위를 만나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잠시 꽃구경을 하는 중에 서로 떨어졌는데, 어제 ‘사려니숲길’에서 외손녀가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하루에 하늘을 세 번 이상 쳐다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래요.”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려고 하였더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동터 오르는 동쪽 하늘이었다. 그 빛은 점점 밝아지며 구름 사이 뚫린 구멍으로 빛살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둥근 빛이 불쑥 구름 위로 고개를 내밀면서 바다 쪽으로 서너 갈래의 밝은 햇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일출이었다. 그 멋진 광경을 외롭게 보이는 소나무 하나가 엑스트라로 끼어들고 있어서,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그림 하나를 완성시켜 주었다. 분명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찾아들었다.

   시간도 많이 갔고 해서 객실로 돌아오니 그 사이 아침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산책 후에 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17.2.1. 15매, 사진 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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