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열전
이 웅 재
요놈은 그 이름부터가 헷갈리는 놈이다. 사람들은 보통 요놈을 ‘쭈꾸미’라고 한다. 그러나 요놈의 올바른 이름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주꾸미’다. ‘자장면’은 ‘짜장면’으로 써도 무방하다고 바꿔주면서 왜 ‘주꾸미’는 ‘쭈꾸미’가 되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거액을 들여서 로비라도 해야만 할지 의문이다.
그런데 그 이름 말고도 또 헷갈리는 것이 있다. 꼴뚜기하고는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 아니냐고 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놈과 그놈은 한참 다른 놈이니까 문제다. 이참에 비슷한 놈들을 종류별로 두 줄로 세워 보기로 하자. 줄을 서려면 먼저 걸어가야 하고, 걸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다리니까 그 다리를 가지고 구분해 보기로 하겠다.
먼저, ‘다리가 8개인 8완목과(八腕目科) 놈들은 요리로 모여라.’라고 했더니 꾸물꾸물대면서 몰려든 놈들. 제일 큰 놈은 문어(文魚)였다. 함자(銜字)에서부터 ‘文’ 자가 들어 있어 연체동물의 해산물 중에서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받는 놈이다. 이어서 낙지와 주꾸미가 합류했다. 요놈들을 ‘문어과’라고 한다. 이들 중 주꾸미가 제일 작은 놈이다 몸길이는 다리끝까지가 24cm 정도이다.
다음, ‘다리가 10개인 십완목과(十腕目科) 놈들 모여라.’라고 했는데, 아까보다는 조금 빨리 모인다. 다리가 10개라서 그런 모양이다. 맨 앞에 오징어, 그리고 몸통 안에 석화질의 길고 납작한 뼈가 들어있어서 갑오징어라고 불리는 놈, 그러나 이놈도 연체동물에 속하기는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뼈대 있는 집안 취급은 못 받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놈들 앞에서는 멸치마저도 한껏 으스댄다. 저는 뼈대가 있는 집 자손이라는 말이다. 다음엔 창오징어가 합류한다. 사람들은 흔히 요놈을 ‘한치’라고들 부른다. 맨 뒤에 꼴뚜기가 꼴뚜기값을 하면서 와서 섰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들 하지 않던가? 속언(俗諺)에 ‘장마다 꼴뚜기’란 말도 있다. 시장의 좌판마다 작고 볼품없고 값어치 없게 널린 꼴뚜기를 두고 그 천박스러움을 비아냥대는 말이다. 하지만 꼴뚜기를 그렇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요 십완목과 놈들은 모두가 ‘꼴뚜기과’에 속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새삼스레 다시 보이는 놈이 꼴뚜기다.
따진다면 이놈들은 8완목과든 10완목과든 모두가 연체동물에 속하기 때문에 물고기 축에는 들지 못한다. ‘물고기’란 어류 중 척추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매주 화요일이면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모임의 이름은 ‘매화(梅花)랑’. ‘梅花’는 ‘每火’의 미화법적인 표현, ‘랑’은 ‘郞’도 되고 ‘娘’도 된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한글로 ‘랑’이라고 쓰면서 ‘너랑 나랑’의 ‘랑’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매화랑 모임은 적을 때는 4명, 많을 때는 6명 정도가 모인다. 대부분 모란에 있는 ‘해현식당’에서 만난다. 식대는 참석자들이 공동으로 갹출하여 낸다. 통산 1만 원이다. 이제는 돈을 벌지 못하니 가급적 절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은 워낙 가격이 싸면서도 안주인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우리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오늘도 여기서 4명이 만나서 오래간만에 ‘주꾸미 볶음’으로 소주 2병, 막걸리 1병을 비웠다.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주꾸미 볶음, 정말 맛있었다. 이제까지 나는 ‘주꾸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 선입관을 단번에 깨뜨려버린 ‘주꾸미 볶음’,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어서 지금 ‘주꾸미 열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생김새로야 별 볼품이 없는 놈이 주꾸미다. 몸에는 둥근 혹 모양의 돌기가 빽빽이 나 있고, 다리에는 빨판이 있다. 놈들을 잡는 방법으로는 조금은 무식하게 고둥, 소라, 전복 등의 껍데기를 줄에 묶어서 바다 밑으로 던져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놈들은 이것을 제 집으로 삼아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속 편한 놈들이다. 그들에게는 ‘내 집 걱정’이 없다. 염치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놈이라 남의 집도 내 집으로 알고 산다. 어쩌면 이것저것 눈치 안 보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가? 무주택자들에게는 이들의 이러한 주거 인식이 부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속으로 들어가려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버리는 기술을 익혀야 할 터, 사람이라면 좀 힘든 일일 수가 있겠지만, 놈들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다.
놈들은 작은 물고기나 새우 등을 잡아먹으며 산다. 그리고 게나 거북이의 먹이가 된다. 적이 가까이 오면 수관(水管)으로 땅을 파서 숨거나 먹물을 뿌리고 도망간다. 주꾸미 요리를 할 적에는 놈의 그 먹물 주머니를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먹물 주머니의 연결 부분을 살짝 누르면서 밀어내어 잘라서 그건 따로 삶아서 먹으면 된다. 이왕이면 다리 가운데에 있는 이도 손가락으로 눌러서 빼어주면 좋다. 볶음을 해 놓았을 때 밥풀처럼 보이는 것은 ‘주꾸미쌀밥’이라고 하는 주꾸미의 알이니까 걱정 말고 먹으면 된다. 탱글탱글한 것이 톡톡 터지는 그 맛은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주꾸미를 한자어로는 준어(蹲魚), 또는 죽금어(竹今魚)라고도 한다. ‘죽금어’는 주꾸미의 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주꾸미는 볶음으로 요리해서 먹은 것이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아닐까 싶은데, 낙지, 문어, 오징어보다도 동맥경화증이나 지방간의 위험을 낮추어 주는 효과가 두드러진다고 하며, 아차, 빼 먹을 뻔하였는데, 치매의 원인인 알츠하이머도 예방해 준다니, 앞으로는 더욱 주꾸미와 친해져야겠다. 한 가지 더, 다이어트에도 좋단다.
(17.2.14.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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