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이를 짝짝이로만 보는 모들뜨기 눈을 바꾸자
이 웅 재
사람들은 좌우 대칭인 물건을 완전한 형태라고들 한다. 좌나 우 어느 한쪽이 강조되는 바가 없으니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를 보면, 조선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는데, 좌우대칭 구도는 왼쪽과 오른쪽에 같은 모양이 배치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그림 한가운데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림의 중앙에는 임금이 앉는 것이요, 그래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용 그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월오봉도는 완전 대칭이 아니다. 한쪽에는 해가 ,다른 한쪽에는 달이 떠 있는 다섯 봉우리의 그림이라서 해와 달이 서로 대칭이 될 수가 없는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대칭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완전 대칭 형태는 아닌 것임을 쉽게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짝으로 되어 있는 인체의 기관들을 보자. 눈, 귀, 손, 발, 양 손과 양 다리, 엉덩이…자세히 보면 모두가 짝짝이가 아닌가? 이 중에서도 눈과 귀는 상당히 대칭에 가깝다고 생각들을 하지만, 시력과 청력만 생각해 보아도 서로가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점을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양말이나 신발 한 켤레의 좌우도 서로 닮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기계로 찍어낸 물건이 아닌 한, 닮은 꼴은 있어도 동일한 사물은 없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그 선둥이와 후둥이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상당히’ 닮은 모습일 수는 있어도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완전 대칭이란 어떤 형태일까? 그것은 아마도 원형(圓形)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원형을 평면에서의 그림이 아닌 입체로 바꾸어 놓으면 공과 같은 형태가 될 것인데, 어디 공에게서 안정감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랴?
마하트마 간디와 관련된 신발 한 짝의 일화를 보자.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탔다.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승강장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는 이미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간디는 그 신발 한 짝을 주울 수가 없었다. 순간,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마저 벗어 승강장으로 던졌다. 그런 행동에 놀라서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간디는 말했다.
“제게 신발 한 짝은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누군가 저 두 짝 신발을 줍는 사람은 유용하게 사용할 수가 있겠지요.”
이와 같은 얘기는 이제 감동을 줄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요사이 사람들은 개개의 특성을 존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개성의 시대가 도래되었다는 말이다. 너는 너, 나는 나다. 삶에서도 모델은 필요할 수가 있지만, 완전 동일시되는 것은 꺼린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짝퉁은 제값을 하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짝짝이란 서로 짝이 아닌 것끼리 합하여 이루어진 한 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짝짝이라면, 어렸을 적 누구나 신발을 짝짝이로 신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짝짝이가 아니라도 모들뜨기로 신어본 경험이 많았을 것이다. 모들뜨기는 ‘두 눈동자가 안쪽으로 치우친 눈’을 가리킨다. 곰곰 생각해 보면, 모들뜨기의 눈으로 보면, 신발의 좌우는 구분이 모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에 와서는 그런 것이 오히려 멋진 모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짝짝이나 모들뜨기 신발이 오히려 개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짝짝이(개성)을 짝짝이(몰개성)로 보는 모들뜨기 눈(잘못된 관점)을 버리자. 바로 보자. 사물마다의 세세한 차이를 분간해 보도록 하자. 엄격한 대칭은 없다. 짝짝이는 오히려 개성적 존재일 수가 있다. 짝짝이는 되레 바람직한 현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짝짝이(본질적인 개성)는 결코 짝짝이(겉으로 보이는 몰개성)가 아니라 훌륭한 조화의 산물이라는 생각으로 바꿔 보자.
관상(觀相)에서는 짝짝이눈을 부귀영화를 누릴 상(相)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요새는 짝짝이 양말 파는 회사도 생겨났다지 않는가? 바로 2003년 뉴욕에 설립된 ‘리틀 미스 매치드(Little Miss Matched Socks)’다. 아이들은 툭하면 양말 한 짝을 잃어버려 짝짝이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고 차린 회사란다. 이 회사에서는 양말을 한 켤레가 아닌 서로 다른 종류로 세 짝 또는 아홉 짝씩 홀수로 판매한다는데, 그 종류가 134개 이상이고 매치할 수 있는 양말 컴비네이션 수만도 무려 8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중앙일보 서정민의 트렌드 노트를 보면 신발도 짝짝이를 파는 회사가 있다고 한다. 스페인의 캐주얼 신발 브랜드 캠퍼는 25년 전부터 양쪽이 다르게 디자인 된 ‘비대칭 신발’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발은 짝짝이다. 오른손잡이 3명 가운데 2명은 왼발이 크다고 한다. 때에 따라 오른발과 왼발의 크기 차이가 두드러질 경우에는 치수가 서로 다른 신발을 고르는 것이 옳을 텐데도 사람들은 고정관념 때문에 큰 발일 가능성이 많은 왼발에만 맞추어 고르는 것이다.
여자의 가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완전 대칭인 여성은 거의 없으며, 남성의 경우에도 고환이 쌍을 이루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고환은 각각 쳐져 있는 정도나 크기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그래야 서로 충돌하거나 마찰을 피해 준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생김새도 생각도 행동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다 똑같은 직업을 바라고 똑같는 집을 원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될까?
피천득은 ‘수필’이라는 수필에서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는데, 그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고 하였다.
고정관념은 바꾸어야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너도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온통 혼란투성이로 변해 버릴 것이 아닌가? (17.1.8.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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