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하철 풍경 세엣

거북이3 2017. 4. 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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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풍경 세엣

                                                                                                                                         이 웅 재

  나는 지하철을 탈 적마다 남녀의 비율을 확인해 본다. 7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몇 사람이 여자고 몇 사람이 남자인가를 세어보는 것이다. 대개 여자가 5명쯤 된다. 한때는 남녀 비율이 비슷한 적도 있었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단연 여성의 숫자가 우세하다. 지하철에서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음식점엘 가도 그렇다. 남성들은 벌어먹기 바빠서?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는 외국 여행을 갈 때에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훨씬 더 많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앞으로 밝혀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지하철에서는 왜 좌석 배치를 서로 마주 보게 만들어 놓았을까? 아마도 보다 많은 사람들을 탑승시키기 위한 방책에서겠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 많은 사람들을 탑승할 수 있는 지하철에 비한다면, 소수의 인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버스에서 그런 좌석 배치가 더욱 수익을 위한 측면에서 필요한 방법이라고 여겨지는데, 이건 정 반대의 현상이니 얼핏 이해가 안 된다. 어쨌든 마주보기의 좌석 배치 때문에 한 동안은 시선 처리에 애를 먹었는데, 요즈음에는 그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스럽다.

  왜 그런가? 모두들 알고 있다시피 요즘에는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한결같이 핸드폰에 폭 빠져 있기 때문이다. 버스의 경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하철의 경우에 비하면 속된 말로 ‘새발의 피’다. 지하철에서는 특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도 핸드폰은 매우 유리한 소품이기 때문이리라.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가장 많이 두고 내리는 물건은 가방류라고 한다. 이해가 간다. 특히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가 그만 깜빡하고 놓고 내리기가 십상이니까. 그런데 두 번째가 휴대폰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휴대폰이란, 말 그대로 휴대하고 다니는 물건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손전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시피 늘 손에 쥐고 다니는 것이 휴대폰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잃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옆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건 기웃거릴 수도 없다. 남의 사생활에 끼어드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 핸드폰을 보는 경우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그저 조용히 필요한 것만 보고 지내야지 공연히 이리저리 움직이다간 잘못하면 몰카나 찍는 치한으로 오인될 수도 있는 일이다.

  휴대폰, 참 난감한 존재다. 멀리 하려니 시대에 뒤떨어지고 가까이 하려니 여러 가지 곤란한 경우도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에는 지하철을 탑승하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었다.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거나, 아니면 지하철 입구에 놓여 있는 무료 신문을 챙기는 일이었다. 지하철에서는 대개 그 신문들을 꺼내 읽었다. 옆 사람이 읽는 신문은 왜 그렇게 궁금한지…. 고개를 돌려 그 신문을 같이 본다. 처음에는 체면을 차리느라 슬금슬금 본다. 그런데 점점 더 기사 내용이 궁금해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예 신문 주인의 시선을 가릴 정도로 머리가 신문 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깜짝 놀라 원위치하곤 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다 읽은 신문은 선반 위에 올려놓고, 그러면 다른 사람이 가져다 보고, 재활용도 그런 재활용이 없었는데…. 요즘 지하철 객차 안에서는 신문 보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객차 안 여기저기에 다 읽고 버려진 신문을 수거하던 가난한 노인들도 사라졌다. “오전에만 폐신문을 모아 2만 원을 번 때도 있었는데….” 폐신문을 수거하던 어느 노인의 말이 안쓰럽게 들린다. 지하철 선반에 버려진 신문을 수거하느라 고생하던 지하철 역무원들은 잡무가 줄어들었다고 좋아한다. 제발 신문을 버릴 때에는 역사마다 비치되어 있는 신문수거함에다가 넣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씀도 사라졌다. 요새는 신문수거함을 일반 쓰레기통으로 대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지하철에서는 신문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모두들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신문 이전에는 책들을 많이 보았다. 책의 경우에는 책 읽는 사람의 시선을 방해할 만큼 ‘공동 독서’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무슨 책일까 궁금하여 그 제목만을 일별하는 것으로 참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그 책 제목에 반해서 나중에 책방에 들러 같은 제목의 책을 사기도 했었다. 책이 책을 사게 만들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책을 읽던 시절도, 신문을 보던 때도 핸드폰에 빠져든 세월에게 모두 다 빼앗겨 버렸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마냥 똑같이 핸드폰에 머리를 박을 수도 없고…, 해서 나는 가끔 빈 자리에 앉게 될 경우에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든다. 그리고는 생각을 정리하여 수첩에 적는다. 가끔은 그렇게 하여 내 수필 한 편이 완성될 때도 있다. 그래서 내게는 지하철을 탈 때에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물건이 수첩과 볼펜이 되었다.

  옛날 송나라의 대문호 취옹(醉翁) 선생께서는 『귀전록(歸田錄)』에서 글을 짓기 위한 착상이 가장 잘 되는 곳이 ‘3상(三上)’이라고 했다. ‘삼상’ 중 마상(馬上)이란 오늘날로 치면 자동차나 지하철에 해당할 것인데, 자동차는 아무래도 그 흔들림이 많아 차 안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정리하며 기록하기’에는 부적절한 듯하지만, 지하철은 딱 안성맞춤이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전자서적은 판매량이 줄어드는데 종이책의 매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동네 서점’ 수도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디지털 피로’가 몰고오는 현상이란다. 미국이나 일본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본다. (17.4.5.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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