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넷 여자 둘
이 웅 재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는 모임이 있다. 회원은 남자 넷 여자 둘이다. 그래서 모임의 이름이 매주 화요일 모이는 ‘랑’이라고 해서 ‘매화랑(每火랑)’이다. ‘랑’은 ‘郞’과 ‘娘’을 아우르면서 ‘함께’의 뜻도 지니는 접속조사의 구실도 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만난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모임에 나가지 못할 때에는 일주일 내내 마음이 찜찜하다. 그만큼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모임이요, 만남이다. 숫자로 보아 남자:여자가 1대1이 아니다 보니, 무슨 남녀 관계의 모임도 아니다. 어쩌다 만나는 사람의 숫자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만나서 하는 일이란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 한 잔을 하며, ‘이바구’를 하는 일이 전부다.
‘이바구’라고 하면 얼핏 일본어가 아닌가 생각들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순국어다. ‘에누리’처럼 일본어로 오해를 받기 쉬우나, ‘이야기’의 경상도 방언일 뿐이다. 그러나 ‘이야기’와는 그 느낌은 다르다. 이야기는 이야기이되 흔히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가리킨다고 할 수가 있다. 아하, ‘쓰잘데기’도 사투리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쓰잘머리’가 표준어라면서, ‘사람이나 사물의 쓸모 있는 면모나 유용한 구석’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그러니까 ‘이바구’란 ‘별 쓸모없는 이야기’, ‘전혀 영양가가 없는 이야기’라고나 하겠다.
술을 마시다 보면, 가끔은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가 오고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이바구는 ‘안 보는 데서 남의 흉이나 보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영양가가 있다고 여겨진다. 최소한도 ‘재미는 있으니까’ 말이다.
예컨대 이런 얘기 따위가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에 해당한다.
“먼저 죽는 사람이 술값 내기!”
“술값 받으러 가야겠구먼.”
“어디루?”
“어딘 어디야, 저승이지.”
“저승사자가 만나게나 해 줄까?”
“에이. 거 왜 있잖아? 뇌물이라는 거.”
“염라대왕 수지맞았어. 저승사자들에게서 상납을 받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왜? 그 자리가 탐이라도 나나?”
“예끼, 이 사람. 그나저나 외상값 받아가지구 나올 때도 반드시 또 뇌물을 주라구….”
“왜?”
“다시 환생할 때 이왕이면 20대로 보이게 해 줍소사 하구 말이지.”
그렇군, 그것도 뇌물을 줘야만 하겠군.”
“갈 때 주고 올 때 주고, 거 돈푼깨나 들겠는데….”
“에그그. 술값 내가 내고 말지.”
“정말? 아유, 고마워. 다음엔 내가 낼게.”
그렇게 해서 술값이 해결되고, 2차로 “빽다방”으로 간다. 그런데, 다방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먹었으니 세금을 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빽다방에는 ‘측간(廁間)’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이 밀리면 15명씩이나 출마하는 대통령에도 출마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세금 얘기가 나왔으니 실제 세금에 대하여 잠시 생각을 해 본다. 어느 정도의 세금이 적정선일까? 과거 동양에서는 주로 정전법(井田法)에 의하여 토지세를 내었다. 말하자면 소득의 1/9을 내었다는 말이다. 서양에서는 어떠했을까? 성경에서 흔히 대하는 말이 ‘십일조’이다. 1/10을 내었다는 말이다. 동양이나 서양의 세금에 대한 사고방식이 거의 비슷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들어오면서는 복지 개념이 첨가되어야 한다. 최소한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삶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가정하면 세금의 적정선은 대략 2/10쯤이 되지 않을까?
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1% 정도가 된다고 한다. 2/10를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미국(21.7%)이나 영국(29.5%), 그리고 OECD 평균(26.7%)보다는 낮다(기재부 2007년 발표). 서구 제국들이 복지정책의 포퓰리즘 때문에 문제가 만다는 점은 이런 데에서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일본(18.0%), 홍콩(14.2%), 싱가포르(14.3%)보다는 월등히 높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어느 정도 적정 수준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좀더 높아진다면 별 수 없이 ‘조세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15명씩이나 출마한 대통령 후보자님들, 제발 바람직한 조세 정책을 염두에 두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때는 “빽다방”이 아닌 생맥주집으로 2차를 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도 ‘이바구’는 제대로 작동한다. 피처라든가 프라이드치킨 등 주 메뉴가 나오기 이전 강냉이 뻥튀기나 마카로니 과자가 나오면, 싱거운 친구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서비스 안주와 마누라와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남자 넷은 서로 머리를 짜내어 대답한다.
“첫째, 맛이 없다.”
“둘째, 값도 싸다.”
“셋째, 하지만 손이 자꾸 간다.”
네 번째 남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머리를 쥐어짠다. 그런데, 여자 둘이 가로챈다.
“이 양반들, 큰일 날 양반들이구먼.”
“성희롱으로 걸리면 대통령 출마나 할 수 있을는지 몰라.”
네 번째 남자는 미처 대답하지 못한 자신이 가장 점잖은 양반으로 둔갑된 사실에 금세 의기양양해진다.
“자아, 쓸데없는 얘기덜 집어치우구, 사랑도 택배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이나 연구해서 우리 신나고 멋들어진 회사나 한번 세워 보자구. 그러기 위한 충전으루 우리 술잔이나 쭈욱 비우자구.”
그렇게 남자 넷과 여자 둘은 이 시대의 서민적 하루를 보내며 지낸다. (17.2.24.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