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삐딱하게 보기

거북이3 2019. 4. 28. 15:00


19.3.13.삐딱하게 보기.hwp



           삐딱하게 보기

                                                                                                                                       이 웅 재

 

  봄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발걸음이 너무 느렸다. 그러나 그것은 봄의 잘못이 아니었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걸음이란 특별히 가고 싶지 않은 곳인 경우 말고는, 어느 경우에나 대부분 빠르게 마련이다. 만남의 즐거움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봄이 오는 길목에는 꽃샘추위라는 놈이, 돌아가는 모퉁이마다 숨어있기 마련이어서, 본의 아니게 느려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봄을 좀더 빨리 맞이하고 싶었다. 겨울의 칙칙하고 음울한 느낌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해서 나는 손꼽아 기다리다가 모란 장날을 맞아 장터를 찾아갔다. 모란 시장은 얼마 전 장터를 이전하여 새로운 느낌이었다. 새로운 느낌의 장터에서 새로운 봄을 값싸게 사오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찾아간 곳은 꽃가게였다. 베란다에 가득한 꽃나무들에게 새로운 봄 냄새를 맡게 하여 모두들 봄의 찬가를 부르게 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군데 꽃가게 난전을 둘러보다가 맨 끝집엘 찾아 들어갔다. 거기서 화사하게 피어난 난초 화분 하나와 꼭 벌거벗은 여인의 나신을 닮은 인삼벤자민 분재 화분 하나를 샀다.‘거금’3만 원이었다. ‘거금에 따옴표를 친 것은 요사이의 나는 정년퇴임을 한 지도 까마득한 백수의 신세인 점을 감안한 표현이다.

  양 손에 화분 하나씩을 들고 지하철 역으로 갔다. 집까지는 한 역밖에 되지 않은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하철에서 내린 뒤였다. 거기서 한 15~20분 정도는 걸어서 가야 했는데, '팔이 떨어지도록'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무겁다는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구, 팔이야!”를 입 밖으로 내뱉은 것이 잘못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내 왈, “버스를 타고 오지, 그걸 들고 무식하게 지하철을 타고 왔어요?”그래서 나는 갑자기 무식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내의 말은 계속되었다.

  “버스비 1300원을 아껴서, 그만큼 상속을 더해 준다고 아이들이 엄청 고마워할 것 같아요?”듣고 보니 그랬다. 앞으로는 아끼지 말고 택시라도 타고 다니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철석같이 믿기로 했다. 그렇게 삐딱하게 보기는 시작되었다.

  이튿날이던가? 신문을 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한 충격을 느꼈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 새 TV 사 드리면 오히려 불효?”라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노인이 매일 30분 이상 TV를 보면 기억력이 크게 감퇴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TV가 낡아서 화면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치지직!’ 소리가 나서 오랫동안 볼 수 없는 형편이라도 새 TV로 바꿔 드리지 않는 것이, ‘효도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이렷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내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꾸어준 아들은 졸지에 불효자가 되어 버린 꼴이다. 내 생전에는 또다시 교체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고마워했었는데 말이다. 퇴직 후로 나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 나부랭이라도 쓰거나,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검색해 보는 일이 말하자면 유일한 낙이랄 수가 있었는데, 그것을 새로 장만해준 아들은 느닷없이 불효자가 되고 말았으니 난감하다.

  얼마 전 친구 하나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거실에 있는 장식장 등 가구가 조금 오래된 것 같아서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새로 교체를 하려고 하였더니, 며느리가 말하더란다.

  “아버님, 아직은 더 쓸 만한데요.”

  글쎄, 그 말은 효심에서 우러나온 말일까? 아니면, 그 반대의 불효막급한 표현일까? 헷갈린다.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더욱 헷갈린다. 하기야 헷갈리는 것이 어찌 이런 일 한두 가지로 끝날 일이던가?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경주부에 효불효교가 있었다고 한다. 신라 시대 얘기다. 아들 일곱을 둔 홀어머니가 아들들이 잠든 틈에 외간 남자를 만나러 강물을 건너 다녔다.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다니시다가 낙상이라도 하시면 큰일이라 여겨 돌다리를 놓아 드렸다. 이에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기고 야행을 그쳤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 다리를 효불효교라고 불렀단다. ‘로 놓아드린 다리가 불효가 되었다는 말이겠는데, 글쎄, 효와 불효, 어느 쪽으로 생각을 해 보아도 삐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 높으신 양반들의 언행을 보자. 어느 장관 후보자는 사드를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민주당 대표를 "감염된 좀비"라고 했었다. 그는 야당 대표였던 대통령이 천안함 5주기를 맞아 군복 차림으로 해병부대를 찾아 '북 소행'이라고 밝히자 "군복 입고 쇼나 하고 있으니"라고 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장관으로 발탁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인재가 없어서일까? 또 김정은이 베트남으로 가는 열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전직 통일부장관 한 사람은 "가다가 내려서 담배 피우는 게 상당히 인간적"이라고 했다. 앞으로는 우리 모두들 인간적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담배를 피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는 이러한 언술(言述)에서 알게 모르게 삐딱하게 보기를 배워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19.3.16.개작 13)


19.3.13.삐딱하게 보기.hwp
0.04MB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달   (0) 2019.09.29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나?  (0) 2019.07.08
몽당연필 구하기  (0) 2019.02.06
산타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나 봐요   (0) 2019.02.04
어떤 여배우의 얼굴  (0) 2019.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