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이 웅 재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 있다. 사면이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그 반대편 하늘을 쳐다보니 허름하게 낮달이 보인다. 낮에도 달이야 가끔씩은 떠 있겠지만 밝은 햇빛 때문에 쉽게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경우, 낮달은 자신의 존재감을 십분 발휘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해는 낮에, 달은 밤에 뜬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낮달이, 더구나 이렇게 날이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떠 있는 낮달은 얼핏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햇빛이 완전히 사라진 후, 어두운 밤하늘에 은은하게 빛을 뿌리는 달, 우리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달다운 달’로 치부한다. 해서 중국의 시선 이태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읊었다.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월기부해음)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나를 따르기만 하네.
이 얼마나 멋진 달의 모습인가? ‘그림자와 나와 달’,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만 내 흉내를 낼 뿐, 우리는 그런 달을 즐기는 것이다.
‘밝은 달’은 낮달이 아니다. 햇빛이 없는 한밤중에야 별빛보다도 밝아서 그 많은 별들의 빛을 무색하게 하고, 자신이야말로 가장 밝은 빛을 낸다고 으스댈 수가 있겠지만, 달은 제 스스로 빛을 발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건 자신이 발하는 빛 때문에 밝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밝은 달’은 기실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빛일 뿐이다. 그래서 햇빛이 가시지 않은 낮 동안의 달빛은 흐릿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석양을 보면서 조금만 더 있으면 제가 그 해를 대신하게 된다고 우쭐대는 꼴은 꼭 누구를 닮았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 찾아든 까닭이다. 자기가 있을 곳이 못 되는데 한 자리 비집고 들어왔으면 분수를 알고 조용히 지낼 일이다. 분수를 알지 못하고 날뛰다간 크게 다친다. 저 혼자만 다치는 게 아니라 가까운 주위의 존재들마저도 다치게 된다는 철리를 왜 깨닫지 못하는가?
“저 밝은 달….”
보름달을 두고 하는 사람들의 말은 저 미욱한 달을 고무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 내가 반드시 ‘빛의 개혁’을 이루고야 말리라.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하여, 용을 써서 밝은 빛을 뿜어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더 이상 빛의 광도(光度)를 올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온갖 노력도 모두 허사였다. 이제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이른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새벽달은 햇님(『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해님’으로 쓰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해님’으로 쓰면 제 맛이 나질 않을 것 같아서 ‘햇님’으로 표기한다)을 찾아가 자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기를 갈구했다.
“그 동안 잘못했습니다, 햇님.”
햇님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한밤중에는 자네가 가장 밝은 빛을 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그 빛은 온전히 제 빛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개똥벌레만도 못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말씀입니다만, 이 기회에 개똥벌레의 명칭에 대한 잘못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들 ‘반딧불이’라는 말들을 사용하고 있던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예전 문헌을 보더라도 개똥벌레는 ‘반듸’라고 했습니다. 그 ‘반듸의 불’이 ‘반딋불’, 요즘 표준어로 바꾼다면 ‘반딧불’인데, 그 곤충 자체를 ‘반딧불이’라고 하니 그런 망발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옳다면 그 불은 ‘반딧불이의 불’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얘기가 갓길로 빠졌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노라니까 성을 합하여 두 글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뻔질나게 신문 지면과 TV 화면을 도배하고 있더군요. 정말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얼마 전까지 제가 그랬으니까요. 무작정 햇님보다 더 밝은 빛을 내어 빛의 ‘개혁’을 이루겠다고 계속 큰소리를 쳤던 제 자신을 생각하면, 쥐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온 힘을 다하여 찾아야겠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낮달의 모습으로 돌아온 달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하도 심란하여 오늘 중앙일보의 ‘안혜리의 시선’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보이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마음 졸이던 사모님과 두 자제분도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지 눈에 선합니다.…임명장을 받으신 그 날. 그러니까 소설가 이××·공×× 같은 맹목적 지지자들이 환호하며 그간 ××님 임명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조롱하느라 SNS를 도배하던 바로 그 날. 점심 후 돌아오는 택시에서 만난 팔순의 택시 기사는 좋은 기색은커녕 대뜸 화부터 내더군요. “군사독재의 군홧발도 이렇게 뻔뻔스럽게 국민 마음 짓이긴 적은 없어요. 이건 국민을 개·돼지가 아니라 아예 쓰레기로 보는 것 아니요. 이런 꼴 보자고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았나 싶어 참을 수가 없어요.’”
낮달은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18세기의 시인 서명인(徐命寅:1725~1802)은 추운 겨울날 화장실엘 다녀오다가 언뜻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단 1구로 된 시를 지었답니다.
‘天寒月委庭(천한월위정-하늘이 추워 달은 마당으로 내려오네).’
이제 저도 빛의 개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이제까지의 생각이 얼마나 뻔뻔스러운 자기기만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서민의 땅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낮달은 드디어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분수를 아는 낮달이었다.
(19.9.26.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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