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나?

거북이3 2019. 7. 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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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나?

                                                                                                                                                 이 웅 재

 

  모처럼 아내와 함께 외출을 했다. 목적지 근처의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무의식적으로 오른편으로 서 있었는데, 아내가 말한다.

  “늙은 티 좀 내지 말아요!”

  듣고 보니 그랬다. 나이 든 사람들이 왼쪽 줄에 서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쪽에는 대체로 젊은이들이 많았다. 오른쪽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아내의 말대로 늙은 티를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끽소리 못하고 왼쪽 줄로 옮겼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젊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는 가급적이면 늙은 티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어떤 것들이 늙은 티에 해당하는 것일까를 하나씩 꼽아보기 시작했다.

  흰 머리에 더하여 대머리, 늘어난 주름살, 느려터진 걸음걸이, 지팡이, 돋보기안경. 그러나 그런 것들은 마음대로 없애거나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일단 논외로 치자. ‘지하철 무임승차권 사용’, 요것도 행하지 않기엔 너무나 힘든 일일 터이고, 그렇더라도 가급적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는 일, 그것도 볼펜으로 밑줄까지 그어대면서 보는 일 따위는 참아야만 한다. 핸드폰 전화도 큰 소리로 받지는 말자. 내가 작은 소리를 내면 상대방이 더 큰 소리로 말을 할 터이니, 알아듣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터이다. , 그리고 은행에서 카드 대신 접수창구를 활용하는 일과 같은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개선할 수도 있는 일일 듯하다. 통 넓은 구닥다리 신사복이나 중절모개똥모자도리우치(헌팅캡)도 가급적 착용하지 말 일이다. 느린 말투도 빠르게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Y셔츠나 T는 왼쪽 가슴께에 주머니가 없는 것으로 바꾸든가, 돈이 들어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그 주머니에 볼펜이나 연필 따위를 꽂고 다니는 일은 절대로 삼갈 일이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도 금물이다. 덧붙인다면, 커피를 마실 때에도 각설탕을 두서너 개, 아니면 시럽이라도 넣고 싶겠지만, 꾸욱 참을 일이다.

이렇게 늙은 티를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를 주워섬기다 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퍽이나 힘드는 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는 것일까하는 데에 생각이 머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절로 나이를 가리키는 낱말들이 떠오른다. 불혹, 지명, 이순그 다음이 고희(古稀)’였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고래희, 그러니까 사람의 일생은 통상적으로 그 이전이라야 하는 셈이다. 그랬다. 환갑, 그거였다. 환갑이면 일단 살 만큼은 살았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니까 그 절반쯤에서부터는 늙어가는 때가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랬다. 환갑을 일생이라 여긴다면 그 반환점은 30살쯤일 것이고, 31살부터는 늙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는 때임이 틀림없다.

  무 자르듯 ‘31살부터라 못 박기가 힘들어서 생긴 말이 이모지년(二毛之年)’이 아닐까 싶다. 인물 좋은 진()나라의 시인 반악(潘岳)32살부터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고사에서 생긴 말로, 2가지의 머리털이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제는 늙기 시작했다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송나라의 개혁정치가인 왕안석(王安石)이 지은 은별녀(別鄞女:은녀와 헤어지다)’에서도 서른을 힘 빠진 노인이라고 했다.

나이는 이제 서른인데 벌써 힘 빠진 노인이다/죽은 너와 살아 있는 나는 이제 동과 서로 헤어진다(行年三十已衰翁, 死生從此各西東).”

  흔히들 말하는 초로(初老)’라는 말이 40대를 가리키는 말인 것도 이와 비슷한 사정에서 생긴 말이 아닐 것인가?

하지만,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놀라울 만큼 길어진 것이다. ‘서른 살이 늙기 시작하는 때라는 말을 하면, ‘저 사람 노망(老妄)이 들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다시 해 보자.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의 "100세 시대 60세는 과거 42세나 마찬가지"(2011.2.19.)를 보면, 요즘에는 현재 나이×0.7’을 하여야 된다고 하였으니, 지난날 늙음이 시작되는 나이는 요즈음으로 치자면 44살쯤 되는 나이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인생의 주요 목표는 그 나이 이전에 어느 정도 성취를 해 놓아야 할 일이다.

  아니,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요즈음은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과거의 환갑에 해당하는 나이인 60세는 ‘100×0.6’이 되는 셈이니, ‘현대판 이모지년31/60=x/100, 51세가 조금 넘는 때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51세까지는 아직 인생의 반환점도 돌지 못한 때라고 생각하고 좀더 활기찬 인생을 살아갈 일이다.

  뿐만 아니라, 51세가 넘었다고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라는 말은 강태공이 문왕에게 픽업되어 영달하게 된 나이가 80이라는 뜻이 아니던가? 서양의 경우를 보아도, 칸트는 칠십대 중반에 인간학을 썼고, 괴테는 그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82세에 파우스트를 완성했다고 하지 않던가? 미켈란젤로도 팔순을 넘기면서 성베드로 성당 천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고 하며, 소포클레스가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를 쓴 것도 89세 때였으며, 파브르가 곤충기를 완성한 것은 무려 92세 때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근의 역사에서도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을 성공시킨 것이 70세였다고 하는가 하면, 2019.03.28. 조선일보이영완 기자에 의하면 스페인 연구진은 “87세에도 뇌세포 생성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니, 나이 들었다고 기죽어 지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때로는 늙어가면서 하나둘 버리며 살아가게 되는 일도,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일, 고마운 일이더라고 깨닫는 일이야말로 인생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방편이 아닌가도 싶다.

  단, 움직여라. 움직이지 않으면 활동 반경을 비롯한 모든 것이 줄어든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19.7.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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