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놀기가 얼마나 힘들다고요 이 웅 재

거북이3 2020. 11. 22. 20:25
놀기가 얼마나 힘들다고요.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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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든 것으로 인식한다. 육체적 노동이 뒤따르는 작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일을 하는 것은 힘든 것으로들 치부한다. 아무리 정신적인 작업이라 할지라도 육체적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때문이다. 때문에 한 동안 계속 일을 하고 나서는 적당히 쉬어야만 했다. 움직임을 멈추고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것을 보이는 한자 ‘휴(休)’자를 보면 ‘쉬는 것’은 ‘일하는 것’보다 훨씬 육체적으로 편안함을 누리는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쉬다’의 사전적 의미가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라는 점을 보아서도 ‘쉬다’는 ‘일하다’와는 반대가 되는 말임을 쉽게 알 수가 있겠다. ‘쉬다’와는 비슷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조금 다른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 ‘놀다’라는 말도 있는데, 그 뜻풀이를 보면,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라고 되어 있어서, ‘일하다’와 마찬가지로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노는 일’은 ‘쉬는 일’과는 달리 ‘재미있는’일이기는 하지만‘일을 한다’는 것이요, 다른 점이라면 ‘즐겁게 지낸다’라는 점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노는 일’은 ‘쉬는 일 ’하고는 다르다는 말이다. ‘일을 한다’는 말도 사실 예전과는 그 뜻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가 있다. 수렵생활을 주된 업으로 삼고 있던 유목민 사회에서야 당연히 일을 하려면 많은 움직임이 뒤따랐을 터이지만, 농경민으로서의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차츰 그 움직임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화이트칼라’란 말이 생겨나면서부터는 아예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무를 보게 되는‘움직임을 거의 배제한일’들이 수두룩하게까지 되었다. 그러한 일들은 한마디로 지겹고 따분한 것일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찌 보면 한 자리에 붙박혀 있다는 점에서 ‘쉬다’와 통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요사이 신세대는 한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지지를 않는다. 심지어는 콘서트에서도 카페에서도 그냥 앉아 있기만 한 것은 질색이라는 것이요,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좌석표보다도 입석표가 더 비씨기도 하다는 것이다. 신문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스탠딩(standing)족’이라고 명명(命名)까지 했다. “그들은 한 손에 휴대전화, 한 손엔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이나 뚜껑 달린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신다. 가방도 두 손이 자유로운 배낭이 제격이다.”(조선일보. 2000.11.13.40면) 그들은 육체적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쉬는’일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적(靜的)이고 고정된 것에 쉽게 싫증을 느낀다. 동적(動的)이고 변화하는 것에 한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한마디로 활력있는 삶을 지향(指向)함을 내보이는 것이라서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가 있겠다. 그냥 편안함을 취하는 ‘쉼’보다 스스로 ‘즐김’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생산적이고 가치 창조적인 것인가? 여름 바캉스 철에 어떻게 보면 고역 중의 고역인 산으로, 바다로 행하는 긴 행렬이 꼬리를 무는 것도 이러한 젊은이들의 취향에서부터 확산된 여가문화가 아니던가? 하다못해 노래방에서도 의자에 앉아만 있는 사람은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스타의 공연(公演)을 보러가서는 그야말로 공연(共演)을 하려고 요란스레 들뛰는 일을 선호한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자. 객석에서 편안하게 구경만 하는 대신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놀고 있는 것이다. 놀기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해 보았는가?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는 것은 쉬는 것보다 열 번 백 번 나은 것이다. 어쩌다가 방향만 제대로 잡아나가게 되면, 그것은 아주 폭발적인 업적을 성취할 수 있는 힘으로 변화하게 될 수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런데 요즈음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마음대로 놀 수도 없는 것이 문제다. 코로나 19여, 빨리 물러가라. (2001. 3.21.수.→2020.11.22.개작. 1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