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할머니는 평소에 종교를 믿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이제 인생도 황혼에 접어들었는데, 무어 하난 믿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하면, ‘믿긴 무얼 믿어?’하고 콧방귀를 뀌셨다. 그래도 무어든 믿는 데가 있어야 죽은 다음 어디 갈 곳이 생기질 않겠느냐고 하면, ‘가긴 어딜 가?’하며 시큰둥하셨다. ‘천당도 있고 극락도 있지 않느냐?’고 다그치면, 모두 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하셨다.
천당, 그곳은 하느님을 믿어야만 간다는 곳이잖아? 우리나라에 천주교나 기독교가 들어온 지가 얼마나 됐어? 그 이전 사람들은 모두가 천당을 갈 수가 없었잖아? 단군왕검도 박혁거세도, 왕건도, 이성계도…아니, 세종대왕도 이순신도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을 수가 없었잖아? 그런 분들 한 분도 못간 곳엘 내가 가서 무얼 하겠다고? 아니, 그런 분들은 그만두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도 가실 수가 없었던 곳이잖아?
그러시던 할머니의 남편께서 돌아가셨다.
“그놈의 영감탱이 잘 갔구먼! 다른 영감탱이들은 잘두 나가 돌아다니더만, 이눔의 영감탱이는 늘 방구석에 틀어백혀서는 밥 달라는 소리만 하루에도 수십 번은 해대더니….”
할머니는 과장법까지 동원해서는 남편 흉을 봤다. 하기야 딴 짓 하지 않고 늘 직장에만 갔다 왔다 하다 보니 너무 변화감이 없어서 짜증이 날 만도 하였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그만큼 가정에 충실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도 아니겠는가?
그런 영감탱이의 소상(小祥)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제사상에 놓을 과일, 무어 무얼 사야지?”
“제사는 무슨 제사, 아주 간단하게 사서 면피만 하자꾸나.”
“그래도, 조율이시(棗栗梨柿)라고 했으니, 최소한 대추 밤 배 감은 사야겠지요? 대추, 밤은 많이씩 사야겠지만, 배나 감은 몇 개씩 살까요? 홀수로 놓아야 하니까 세 개, 다섯 개?”
“세 개, 다섯 개씩 사서 다 뭐하게? 하나씩만 사, 하나씩만. 제상에 올라갔던 과일들은 난 먹지도 않는다, 귀신이 먹던 거, 아래 위쪽은 도려내기까지 한 거, 찝찝해서….”
그랬던 할망구였다. 그런데 막상 소상 날짜가 코 밑으로 다가오니까 달라졌다. 달라져도 보통 달라진 게 아니었다.
“엄마, 제사상에 올릴 과일, 몇 개씩 사라고 그랬지?”
“글쎄다, 요 근래론 제사 지내본 지도 오래 되어서….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이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굉장히 여러 가지 음식들을 정성들여 차려 놓았던 모양인데….”
서두부터 변해 있었다. ‘제사는 무슨 제사’,‘면피만 하자꾸나’가 아니었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동육서…반서갱동(飯西羹東), 좌포우혜(左脯右醯), 두동미서(頭東尾西), 제수 진설 방식도 하 여러 가지가 되어 놔서, 도대체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구나. 그리고 배는 있는데 사과는 왜 빠졌는지….”
아이들은 어이가 없었다. 언제 저런 제수 진설 방식까지 공부해 두셨을까?
“엄마, 그런 거, 아무 근거도 없는 속설일 뿐이야.”
“그래두, 옛날부터 내려오던 관습인데….”
“평소에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던 것이면 무얼 올려도 관계없잖아? 예를 들어서 바나나나 껌 같은 것도 제수로 사용할 수도 있을 거구요.”
“하지만 어떻게 하루아침에 관습을 바꿀 수가 있다는 말이냐?”
아주 달라지신 모습을 보고 자식들은 의아해했다.
“그래서 과일은 몇 개씩을 사라구요?”
하 답답해진 아이들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희들이 그랬잖아? 다섯 개씩은 사야 한다구….”
어이가 없었지만, 자식들은 엄마 말대로 다섯 개씩을 샀다. 그러면서 말했다.
“오늘은 소상이니까 그렇게 하지만, 나중에 설날이나 추석날 같은 차례(茶禮) 때에는 정말로 간단히 차와 과자, 과일 등으로 간단히 지내는 거예요?”
아이들은 확인까지 하고 엄마가 말하는 대로 다섯 개씩을 샀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제사상에는 하나씩만 놓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머지 것들은 자신이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식구들은 밤을 까고 있는 등 제사상 차릴 준비에 바쁜데, 정작 본인은 밤을 까서는 까는 족족 모두 ‘입으로’진상(進上)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젠 노망까지 나시는 모양이다 싶어 그저 모르는 척 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다 보니 가을도 다 지나간 때인데도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기가 한 마리 앵앵 거리고 돌아다니고 있기에, 그 모기를 잡으면서 “처서(處暑)도 지난 지 오래고, 상강(霜降)까지 지났는데 어디서 모기가 들어왔지?”하였더니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모기장문을 열어 놨었단다. 그래야 네 애비가 제사 받아먹으러 방으로 들어올 것 아니냐?”
‘죽으면 그만이라더니….’라고 말씀하시던 할망구였다.
(20.11.29.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