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해위(海葦:尹潽善 전 대통령) 선생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도자기에 써서 남긴 글이 하나 있다.‘충국효친(忠國孝親)’,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라는 말이다. 전통적인 유교 덕목이라 하겠다.
우리는 충효(忠孝)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다. 순서를 바꾸어 효충(孝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뒤바뀐 것이다.‘충’보다는 ‘효’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제까지 순서를 뒤바꾸어 써 왔을까?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살펴보자.
먼저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이는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될 도리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오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으로, 부자지간에는 친함이, 군신지간에는 의리가, 부부사이에는 분별(分別)이,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 친구끼리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삼강에서는 군신(君臣) 관계가 먼저 언급되고 다음에 부자 관계를 말했는데, 오륜의 경우에는 부자 관계 다음 군신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어째서 삼강과 오륜에서 서로 그 순서를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삼강의 ‘강(綱)’은 ‘벼리’라는 뜻이다. 벼리는 ‘그물의 큰 코’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지켜야 할 커다란 강령 세 가지가 삼강인 것이다. 오륜의 ‘륜(倫)’은 ‘인륜(人倫)’를 가리킨다. 곧 사람으로서의 떳떳한 도리를 말한다.
좀 더 분명히 해 보자. 삼강은 정치적인 강령이다. 이에 비해 오륜은 인륜, 곧 인간 본연의 도리라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삼강에서는 충이 효보다 먼저 강조되고, 오륜에서는 효가 충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이제 순서는 정해졌다. 충보다 효가 앞서야 옳다는 말이다. 효가 있어야 충도 생기는 것이다. ‘충효’라는 말을 벼슬하는 사람들이 일반 백성들에게 자꾸 강조하다 보니 굳어진 것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늘 그렇게 사람들을 혼동시킨다. 그 혼동시키는 연유도 바로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다. 자기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국가의 안전을 내세우고, 자기 가족이 배불리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남들보고 ‘충’이야말로 덕목 중의 덕목이라고 치켜세운다. 전쟁이라도 터져 보라. 남보다 먼저 해외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힘없는 국민들이야 도망가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다. 이중국적 같은 것, 돈 없는 서민은 그런 것 어떻게 해야 취득할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정치꾼들’은 그런 것은 마치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들에게 내려진 상훈(賞勳)인 양 여기면서도 겉으로는 숨기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거들먹거리기를 마지않는다. (00.8.24.목→20.11.23.월. 8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