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유혹

지리산의 유혹1

거북이3 2006. 1. 30. 09:57

지리산의 유혹1

                                       이  웅  재


 지리산은 나를 세 번 유혹했다.

 그 첫 번째는 1973년 5월이었다. 나는 그 해에 늦은 나이로 결혼을 했고, 남한 일주의 신혼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을 때였다. 예상보다 너무 길어진 스케줄 때문에 서둘러 막차를 탔지만, 지리산 자락의 화엄사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어둠이 깔린 뒤였다. 따라서 우선 잠잘 데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화엄사 근처는 불야성을 방불(彷佛)케 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마다 인파로 북적거렸고, 가는 데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여관을 정하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여관이란 여관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초만원(超滿員)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돌아다녀 보아야 하룻밤을 머물 만한 곳은 없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구례(求禮) 읍내(邑內) 쪽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실정이 되어버렸다. 그 당시만 해도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진 그곳에는 Taxi마저 끊겨 있었다. 정말로 난감했다.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5월이긴 하지만, 산자락의 밤 기운은 한데서 야숙(夜宿)을 하기에는 너무 추웠다. 예상보다 길어진 스케줄 때문에 억지로 막차를 탄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수학여행 철이었다는 점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망연 자실(茫然自失)하여 맥을 놓고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잠자릴 구하시는 모양이죠? 요즘 같은 때는 일찍 오지 않으면 여관 구하기가 힘들어요.”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약 올리는 건가? 나는 힐끗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으시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저의(底意)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박(民泊)’이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이었고, 따라서 여관이 아닌 곳에서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비정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먼저 경계심부터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상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실은 우리 집도 여관을 했었는데,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서 지난 가을부터 그만두고 식당만 운영하고 있어요. 아마도 신혼 여행이신가 본데, 이 곳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면 되겠어요? 여관을 했던 집이니까 방은 깨끗한 것이 비어 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빈 방이고 하니 그냥 주무세요. 숙박비는 따로 받지 않고 저녁과 아침 식사대만 내세요.”

 식사대만 내라는 말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낼 생각을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돈을 낼 수 있는 구실이 생겼으니, 전적으로 무슨 사기를 위한 행위는 아니겠거니 하고,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은 사기라고 하더라도, 어떤 일을 당할지는 모르지만, 정신만 바싹 차리고 지낼 수밖에는 없는 처지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나의 말에 아내가 된 지 5일밖에 되지 않는 내 아내는 심히 불안한 모양으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하지만, 도리가 있는가? 밤을 새워서라도 아내를 지키면서 지낼 수밖에…. 그래도 한데서 지키는 일보다는 나은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민박인데, 우리는 정말로 난감한 입장에서 그렇게 민박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밤새 잠을 자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겠다던 마음과는 달리 워낙이 강행군이었던 여행의 막바지라서 그랬던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곤한 잠에 빠져들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누군가가 내 허벅지 살을 꼬집는 바람에 나는 벌떡 놀라 일어났다.

 “으…응! 무슨 일이야?”

 그러나, 별 일은 없었다. 날이 새었다고 아내가 나를 깨웠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주겠다던 마음을 가졌었는데,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니…. 나는 민망한 마음에 몸둘 바를 몰랐다. 그래서 겸연쩍게 방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휴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는 방에서 나왔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세수는 요 앞길을 따라 계곡으로 올라가셔서 하면 정신도 버쩍 들고 아주 상쾌해진답니다.”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돗물 값을 아끼려고 그러나 하면서도, 하룻밤 무사히 지냈으니 그쯤이야 양보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아내의 손을 잡고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 물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가 아니라, 온몸을 부르르 떨게 할 정도로 차가웠다. 새벽 공기도 아주 신선하여, 우리는 이리로 세수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수를 하고 내려오다 보니, 바로 화엄사 옆 계곡이었는데, 웬 여승 한 분이 그 시간에 빨래를 하고 있었다.

 “화엄사로 들어가려면 어디로 가야 됩니까?”

 정중하게 물었다.

 “이리로 들어가세요.”

 여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허물어진  돌담이었다. 우리는 바윗돌을 골라 디디며 계곡 물을 건너 허물어진 돌담을 넘어 화엄사 경내로 들어갔고, 비교적 여유롭게 화엄사를 주욱 둘러보았다. 좀더 구석구석마다 둘러보고 싶었으나, 아직 식전(食前)이라 배도 고팠고, 시간도 꽤 흐른데다가 또 방을 빌려준 집에서도 아침 식사 때문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서둘러 정문을 찾아 화엄사를 벗어났다.

 그런데 정문을 나오다 보니, 입장권을 넣는 함(函)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장료 생각은 전혀 해 보지 못했었는데, 우리는 결국 무료 입장을 한 셈이었다. 그것도 허물어진 돌담을 넘어서….

 그때는 시간에 쫓겨서 지리산 등반까지는 하지 못하였지만, 어쨌든 첫 번째 지리산과의 대면은 그런 식으로 수인사(修人事)를 치렀던 것이다. 첫 대면치고는 너무 무례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 속에서, 늘 지리산에 대하여 미안스런 마음을 가지고 지낸다.

 아울러 덧붙일 것은, 그 당시 우리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그 ‘민박’집 주인에 대해서도, 고마운 호의를 순수하게 호의로 대하지 못했던 점, 고개 숙여 사과하고, 빨래를 하시던 여스님께도 뜻하지 않게 ‘화엄사 무료 관람’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지리산의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모두, ‘언덕을 넘어서 가자’ 3  (0) 2007.10.29
지리산 종주기  (0) 2006.08.25
지리산의 유혹 3  (0) 2006.02.05
지리산의 유혹 2  (0) 200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