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유혹 3
이 웅 재
지리산과의 세 번째 만남은 금년(’99년) 7월 3~4일에 이루어졌다.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에서 지리산 국립공원을 탐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은 국시모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곳이었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곳이었기에, 국시모에서 보내온 Fax를 받자마자 나는 아내와 맏딸인 한아까지도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동행을 하기로 했다. T.V나 신문에서는 장마를 예보하고 있었지만, 지리산의 유혹은 그런 걱정보다 더욱 강했던 것이다. 더구나 노고단(老姑壇)쪽은 안식년이라서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입산금지가 되어있는 곳, 찬스였다.
약속 장소인 양재동 서초 구민회관 앞에 도착하니, Y간사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잠시 후 국시모의 대표 J씨가 도착했고, 나는 국시모에 처음으로 동참하게 된 같은 대학의 K교수를 마중하기 위해서 양재역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려 K교수를 만나 전세 버스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 동안 버스에는 청와대 환경비서관 S씨도 와 있어서 서로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지리산을 만나러 가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오랜만에 연인이라도 만나러 가는 듯 가슴이 설레었다. 그래서 지그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나를 국시모에 끌어들인 초등학교 동기 동창인 L씨였다.
예정 시간을 30분쯤 넘겨 3시가 되자 버스는 출발했다. 총 인원 19명, S씨와 나만 가족을 동반했고 다른 회원들은 모두 단신(單身)이었다.
“동강(東江)엔 다녀왔겠지?”
버스가 출발하자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물었다.
“아니, 못 갔어, 미안해. 동강으로 떠나기 며칠 전, 남한산성엘 갔었어. 하산 길에 그만 삐끗하여 발목을 삐는 바람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동강은 나를 초대하기 싫었던 모양이야.”
“그거 안 됐군. 언제 시간 나면 나하고 한번 같이 가자구.”
나는 배낭을 끌러 집에서 가져온 국산 양주를 꺼냈다.
“장거리 여행 땐, 이런 게 가끔 필요하더라구.”
주거니받거니 하다보니, 스르르 졸음이 왔다. 우리의 몸 가운데에서 가장 서로 자주 만나는 것이 윗눈썹과 아랫눈썹인데, 놈들은 또 서로 죽고 못 살겠다는 것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차창 밖에는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오늘쯤 장마가 남부 지방에 상륙할 것이라고 하더니…. 차창 밖으로 이정표를 보니 ‘오리정’. 춘향이가 이도령과 이별하던 곳이다. 내려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며, 우리의 고전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고프기도 했지만, 무정한 버스는 계속 달렸다. ‘동창 춘향가’는 이 오리정 이별 장면으로 끝난다. 그 이상은 어른들 몫이라서 그랬을까? 오리정에서 춘향이를 이별한 이도령은 한양 삼청동으로 갔었지? 나는 중앙청 앞을 지날 때면 늘 삼청동의 이도령을 생각했었다. 그는 나에게는 실존 인물보다도 더욱 실존적인 인물이었다.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남원에 가서 춘향이를 만나보고 어사출도했듯이, 나도 빨리 지리산을 만나 옛 회포를 풀어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마음이 들떴다.
목적지에 도착한 때는 저녁 7시쯤 되었을까? 공원 관리공단의 소장이 우리들을 영접했고, 지리산 생태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줄 호남대의 O교수 등도 현지에서 합류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관리소장이 이끄는 대로 식당부터 찾아 들어가 배를 채운 다음, 전세 버스를 비롯하여 현지에서 동원된 몇 대의 자가용을 이용하여, 드디어 지리산의 품속을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리산은 너무나 오래간만에 찾아왔다고 내게 투정을 하는 것일까? 걱정했던 만큼의 굵은 비는 아니었지만, 안개보다는 좀더 굵은 는개비가 계속 내려 밤중의 지리산은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았다. 꼬불꼬불한 길을 조심스레 한 동안 올라가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때는 밤도 이슥한 무렵, 는개는 계속 내리고 있어, 바로 앞의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부터는 소형차로만 이동할 수 있는데, 차도 모자랐거니와 올라가는 길 입구는 목책인지 철책인지가 자물쇠까지 잠긴 채 가로막고 있어서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안식년을 이용하여 차도는 공사 중이었고, 인부들이 열쇠를 가진 채 퇴근해 버려서 난감한 처지였다. 지리산은 그렇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관리소장이 이리저리 연락을 하여 한참을 기다린 후 열쇠가 도착했고, 일부는 걷고 일부는 차를 타고 다시 노고단 산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웬만하면 걸어서 올라가고자 했으나 삔 발목이 아직도 성치 못하기에, 지리산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지만 차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리산이 그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차도는 완전히 끊겨져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발목은 시큼시큼하고, 사방은 칠흑 같은 암흑이었고…. 배낭에서 미리 준비해 갔던 조그마한 손전등을 꺼내 한아에게 발 밑을 비추어 달라고 하면서 힘든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은 철저히 나를 골탕먹이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죽을힘을 다하여 지리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땀은 비오듯하고, 높낮이를 구분하기 힘든 산길은 구불구불 끝날 줄 모르고…. 모처럼 가슴 설레며 찾아왔는데, 투정치곤 너무하다 싶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간신히 산장엘 도착하여서는 또 밤 늦게까지 지리산에 대한 세미나를 비롯하여 영상 자료를 보고…. 2층 ‘차일봉 실(室)’에 들었을 때는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이튿날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졌다. 몇몇 사람 이외에는 아직 산장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엊저녁의 고생을 씻은 듯 가셔지게 만드는 지리산의 그 청순한 모습. 내가 네 산자락에 배낭을 묻고 오르다 내려갔더니라. 감회가 뭉클 솟았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모이자, 노고단을 향하여 이동했다. 발목은 계속 시큼거렸지만, O교수의 지리산 생태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노고단의 바로 밑에 도착하니, 다시 나무로 만든 문이 자물통을 달고 우리들을 막고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큰키나무는 별로 없이, 널따란 초원처럼 보였다. 안내해 주는 관리소의 직원이 문을 열어주어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길은 2중으로 되어 있었다. 아래는 돌을 박아서 만든 등산길, 위쪽은 나무로 된 길을 고가도로처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 나무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그래야만 되는 것일까? 사실 그곳은 길을 따로 만들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되는 곳이었다. 꼭 노고단까지 가고 싶은 사람은 그저 사람들의 발자취로 생긴 좁은 등산길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나는 산오이풀이며 원추리꽃들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노고단으로 향하였다. 중간의 쉼터에서 아래쪽 산자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르고, 더불어 짙은 안개가 끼여있어 그 오밀조밀한 모습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볼 수가 없었다. 지리산은 제 몸뚱아리를 그렇게 신비로움으로 숨기고 있었다. 얄미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아무에게나 네 나신(裸身)을 보여줘서는 안 되지….
드디어 노고단.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신을 주장하려는 것일까? 무척이나 공들여 높게 쌓아놓은 돌탑. 혹자는 그것이 바로 노고단의 ‘단(壇)’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노고단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연을 훼손시키는 하나의 인공물일 뿐이다. 더구나 그 앞쪽에는 자연석에다가 크게 ‘노고단’이라고 한자로 써 놓은 표석(標石)이 서 있었다. 거기까지도 좋았다. 바로 옆에는 자연석도 아닌 비석이 또 ‘노고단’이라는 글씨를 새긴 채 서 있는 것이다. ‘××번영회’라는 글씨까지도 또렸하게.
서글펐다. 안타까웠다. 노고단, 내 사랑이여. 누가 이토록 당신을 유린하고 속화(俗化)시켰는가? 과거 당신을 함부로 훼손시킨 자들에겐 당신도 엄청난 저주를 퍼부었건만…. 당신은 6․25의 여진(餘震) 때 당신의 온몸을 마구 유린하던 인명(人命)들을 얼마나 많이 저주하여 거부했던가? 가까이로는 작년만 해도 당신은 당신의 몸을 바캉스라는 이름으로 마구 침범하는 많은 사람들을 비명(非命)으로 숨지게 하지 않았던가?
나는 당신의 그 굳은 정조(貞操)를 알고 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만을 받아들이겠다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나는 당신을 정복하러 다시 올 것이다. 그건 유린과는 다르다. 물론 침범과도 다른 것이다. ‘정복’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나에게 말해 다오. ‘사랑’하러, ‘애무’하러 오라고. 그런데 걱정이다. 내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나날들이 얼마나 남아있을지가….
지리산이여, 노고단이여(지리산에는 많은 봉우리가 있지만, 당신보다도 높은 봉우리들도 많지만, 그건 나의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수필문학. 99.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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