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기

난타(亂打), 2. 오늘의 신랑신부

거북이3 2006. 2. 22. 20:32
 

   난타(亂打), 2. 오늘의 신랑신부

                       이  웅  재           

 새로운 직원이 하나 등장한다. 요리사들이 그에게 청소를 시킨다. 그는 쓰레기통에 들어있던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쓰레기를 뽑아 관객석으로 던진다. 그걸 받아든 어느 남성 관객 분, 허허 웃는다. 식기, 쓰레기통 등 모두가 악기가 되어 신명 나는 난장판이 된다. 난타, 난타…두들기고 두들긴다. 리드미컬하게…. 일상에 찌들었던 마음들, 평소에 응어리졌던 한(恨)이 그 소리를 따라 해원(解寃)이 된다. 비언어적 공연으로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스레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요리사 하나는 둥근 통을 쓰고 신나게 노래한다. 매니저가 나타나서 막대기로 그 통을 갈긴다. 통이 돌아간다. 거기에는 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시 난타, 난타….

 갑자기 요리사들이 좌우 양쪽 관객석으로 뛰어든다. 그러더니 각각 남녀 관객 한 사람씩을 끌고 나온다. 조리대쪽으로 가서는 결혼식 복장을 입힌다. 사모관대 쓰고, 족두리 쓰고…. 오늘의 신랑신부인 것이다. 그들에게 음식을 먹어보게 한다. 죽으로 보이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이미 그들은 배우가 되어 있었다.

 요리사들 얼굴이 모두 천정을 향한다. 앵앵~ 소리가 난다. 그래, 파리가 날아든 모양이다. 소리 따라 요리사들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일사불란하다. 질서가 있어야 아름다움이 뒤따르는 것이다. 난타, 난타…소리고 행동이고 어지러운 듯하지만 그 속에 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그래야지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무질서하고 비윤리적인 듯이 보이는 많은 일상사들도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있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파리가 신부의 국그릇에 빠진 듯, 그것을 건져내고, 신랑신부 관객도 퇴장하고….

 다시 난장. 늘 한 놈이 문제다. 가장 늦게 등장한 청소하던 막내 요리사다. 고무장갑에 바람을 넣어 머리에다 쓰기도 하고. 서로서로 음식재료들을 던지고 받고 하는데, 그 요리사 조리대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는다. 놀라 허겁지겁대는 모습들도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워 어린이 관객들을 요절복통케 하고….

 이젠 접시를 던지고 받고 한다. 마주 보고 던지고 받더니, 뒤로도 던진다. 무동을 서서도 던지고, 3각형으로 주고받고도 한다.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 저 정도라면 북한의 금강산 교예단의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관객들의 요란스런 박수소리가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매니저가 오리 한 마리를 가지고 등장한다. 요리를 해야 될 놈인 모양인데, 가스레인지에 넣어도 죽지 않고 꽥꽥 소리를 지른다. 매니저는 손도끼를 가지고 와서 요리사들에게 오리 목을 따라고 주문한다. 요리사들은 서로 그 일을 맡지 않으려고 발뺌하며 이리저리 피해 다닌다. 어린아이 관객들은 그 모습들을 보며 마냥 즐겁다. 결국은 막내 요리사에게로 임무가 돌아가고 무대 오른쪽으로 오리를 가지고 사라졌는데, 그쪽에서 오리털이 계속 날아 들어온다.

 다시 조리대. 맨 오른쪽의 주방장은 양파를 썰고, 가운데의 두 요리사는 오이와 당근, 그리고 막내는 양배추를 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난타 공연으로 소비되는 연간 야채 소비량은 양파 3,200여 개, 오이 14,000여 개,  당근 6,400여 개, 양배추 5,300여 개라고 한다. 그런 것들을 썰면서 그걸 노래로도 한다. 주방장이 ‘양파~~~’ 하니 막내가 ‘양배추~’ 한다. 양배추 양배추 양배추, 소리가 점점 커지고 덩달아 당근, 오이도 따라서 불린다. 그리고 그것을 써는 소리들, 타타타타타…. 부엌칼 소리가 멋진 화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썰어놓은 양파, 오이, 당근, 양배추를 서로 뿌리면서 장난질한다. 그러다가 막내가 칼춤으로 발전시킨다. 큰 칼을 양손에 들고 추는 칼춤, 때로는 멋진 곡선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직선의 움직임…, 오이, 당근도 잘게잘게 썰리고, 아, 갑자기 막내의 뾰족한 칼끝이 양쪽 허리로 돌진한다. 관객들의 입에서 ‘아유, 저런!’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의 입에서는 ‘안 돼!’ 하는 단말마의 비명소리까지도 흘러나온다. 칼은 멋지게 허리 바로 앞에서 멈춘다. 그러더니 온몸으로 칼춤을 춘다. 다리도 머리도 따라서 움직인다. 요리사들끼리 자리도 바꾸고, 요리사 모자도 벗어던지고, 때로는 손동작이 서로 엇갈리기도 하여 관객들이 훅! 놀람의 소리를 머금게 하기도 하면서 마냥 칼춤의 춤사위가 어우러진다.

 바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마음 놓고 어질러놓은 난장판이 어린 관객들에겐 매우 신명이 나는 모양이다. 더구나 매니저가 나오다가 거기 미끄러져 꽈당! 넘어졌더니 어린 관객들은 발까지 구르며 까르르르…! 웃는다.


'관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도 없었다  (0) 2006.11.02
난타(亂打), 3. 마음 속 응어리들을 다시 주워가지고  (0) 2006.02.25
난타(亂打), 1. 상식을 벗어 던지다  (0) 2006.02.20
왕의 남자 관람기  (0) 2006.01.29
마포 황부자  (0) 2006.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