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직한 남편 되기

믿음직한 남편 되기 1

거북이3 2006. 3. 12. 16:09
 

          믿음직한 남편 되기 1

                                                         이  웅  재 

 신혼 초였다. 단칸방 셋방살이로 시작한 신혼은 그런 대로 알콩달콩, 아기자기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나보다도 키가 커 보이는 아내는 무척 근면, 검소했다. 나도 아내를 끔찍이 사랑해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내에게서는 태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몹시 괴로워하는 듯했다. 왜 그러느냐고 걱정스럽게 묻는 나에게 아내는 말했다.

 “어디선가 썩는 냄새가 나요.”

 신혼이라 셋방이기는 하지만, 새로 도배장판까지 하고 살림을 차린 것인데, 썩는 냄새라니? 임신 때문에 지나치게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여기고 며칠을 지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내의 말은 훨씬 섬뜩하게 바뀌고 있었다.

 “송장 썩는 냄새가 나요.”

 나는 늘 술에 절어든 그 무딘 내 코를 열심히 벌름거려 보았다. 맞았다. 맞았다. 냄새가 났다. 그것도 송장 썩는 냄새가 났다. 이럴 수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방 안팎을 자세히 관찰했다. 어라? 부엌으로 나가는 쪽문쯤에 구더기 한두 마리가 꼼작거리고 있었다. 구더기? 구더기? 아무래도 이상했다.

 동서남북 두루 살폈으나 이상이 없다. 웬 일일까?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놀랐다. 구더기가 꼬물거리던 바로 위쪽 천장이 젖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곳에 시체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내를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칼을 찾아 가지고 와서 그 젖어있는 천장을 사방 20cm쯤 도려냈다.

 털썩! 사체였다. 아, 사람의 시체는 아니고, 죽은 쥐의 사체였다. 엄청 큰 놈이었다. 고양이만했다. 놈과 함께 수많은 구더기가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구더기, 구더기, 구더기….울컥! 구역질이 나왔다. 하지만, 참았다. 아내를 위하여 참았다. 이건, 내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아닌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쓰레받기와 방비를 가지고 와서 꼬물거리는 구더기와 그 보기만 해도 섬찍하고 토악질이 절로 나는 큼직한 놈의 썩은 쥐를 치웠다. 쥐란 놈, 몸의 반쯤은 구더기에게 뜯겨 덜렁덜렁한 상태였다.

 나는 지금도 그것을 어떻게 치울 수 있었는지,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아마도 나 혼자였다면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불러서 치워달라고 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아내의 ‘믿음직한 남편’이어야 했다. ‘믿음직한 남편’, 그건 아무나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도 나처럼 죽은 쥐의 사체와 그것을 뜯어먹던 수많은 구더기들을, 아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깨끗이 치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될 수 있는 일이다.

 작업이 끝난 후 아내가 물었다.

 “무엇 때문이었어요?”

 이럴 땐 별 일 아니란 듯이 대범하게 답해야 된다.

 “응, 글쎄, 조그마한 쥐새끼 하나가 죽어서 그랬지.”

 아내는 직사각형으로 도려내진 천장을 쳐다보았다.

 “별 거 아니야. 아주 쬐그만 놈이 죽었더라구.”

 미심쩍어하는 아내를 최대한 안심시켜야 했다. 선의의 거짓말은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저 천장은 어떻게 하지?”

 아내가 말했다. 별 걸 다 걱정하는군. 하긴 그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믿음직한 남편’이 되려면 그러한 아내의 걱정마저도 깔끔하게 없애주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해서 나는 안집으로 쳐들어갔다. 보무도 당당하게. 사실 겉으로는 보무당당이지만, 속으로는 엄청 쫄면서 안집을 향해 전진, 전진을 했다.

 “저―, 죄송한데요.”

 공연히 내 몸이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조용히 묻는 목소리가 내게는 우렛소리처럼 들렸다.

 “실은, 저희 방 천장 도배 한 장만 다시 해 달라구요.”

 “천장 도배? 왜요?”

 “그게요…. 이러쿵저러쿵해서 이렇게저렇게 되었거든요. 문제는 천장이 뻥 뚫렸다는 거죠. 아무래도 그 상태로 지내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요. 더구나, 제 아내가 지금 임신 중이거든요.”

 내가 생각해도 무척 말이 길어졌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남편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믿음직스러워야’ 했다.  ‘믿음직한 남편’이 되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모처럼의 ‘용기(?)’를 내어 말했던 것이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그 부분 도배를 다시 해 드리지요.”

 이제 되었구나,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렸다. 나 원 참, 지금 따져보니 기껏 도배지 한 장 정도만 더 붙이면 될 일인데,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도 고마운지…. 아마도 그것은  ‘믿음직한 남편’이 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랬던 모양이다.

  ‘믿음직한 남편’, 그건, 다시 한번 단언하건대, 아무나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썩은 쥐와 그놈을 파먹던 수많은 구더기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깨끗이 치울 수 있어야 하고, 그와 같은 신혼부부에게 방을 세로 주었을 때는, 그렇다, 쥐 죽은 자리 정도는 새로 도배를 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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