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전 수필

제 15회 수필문학 하계세미나 질의서

거북이3 2006. 7. 16. 01:32

 

건국대 명예교수 김일근 교수의

  ‘이른바 연암소설은 수필이다’를 듣고

                  (제15회 수필문학 하계세미나 질의서 )

                             동원대학  교수  이   웅   재   


 평소 존함은 익히 들어왔으나 직접 만나 뵙지는 못 했던 노대학자인 김 박사님의 주제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른바 연암소설은 수필이다’라는 말씀은 50년 동안이나 연암소설을 연구해 오신 분께서 내리신 결론이니 전적으로 믿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연암의 12 작품 중 유일한 허구 작품이라서 ‘소설’로 볼 수밖에 없는 「양반전」 1편과 소실된 「역학대도」, 「봉산학자」 2편을 제외하고는 다 당시의 실존인물에 대한 전기물임을 입증하여 이들이 수필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그 중 「허생(전)」과 「호질(문)」은 격자 내의 이야기만을 따로 떼어서 본다면 몰라도 전문과 본문, 후지를 통틀어서 본다면 수필일 수밖에 없다는 논증은 우리 수필문학의 위상을 한층 높여줄 수 있는 주장이라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사실 이런 점은 『삼국사기』 열전 설총 조에 나오는 「화왕계」나 『삼국유사』 탑상(塔像) 제4에 나오는 「조신몽 설화」가 같은 격자 구성으로 되어 있는 작품이지만 소설이라고 하지 않는 점을 보아서도 매우 타당한 견해라고 할 것입니다. 특히 「조신몽 설화」는 몽자류 소설(구운몽, 옥루몽, 원생몽유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요, 이광수의 」 으로 개작된 작품이기도 한데 이를 소설이라고 보는 견해는 별로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가지고 생각해볼 때, 우리는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우리의 고전작품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수필작품이라는 점을 선점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해서 저는 질의보다는 오히려 수필문학사의 강회장 님에게 건의를 하고자 합니다. 수필로 볼 수 있는 우리의 고전작품들을 찾아내고 이를 『수필문학』지에 소개 및 해설 등을 해 주는 난을 만들어 주실 수는 없는지요?

「화왕계」, 「조신몽 설화」 이외에도 예컨대 고려 제1의 문장가 이규보(李奎報:1168-1241)경설(鏡說), 슬견설(虱犬說), 「괴토실설(壞土室說)」,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도자설(盜子說)」,「등산설(登山說)」 같은 「훈자오설(訓子五說)」, 최연(崔演:1503-1549년)의 묘포서설(猫捕鼠說)」, 남용익(南龍翼:1628-1692)의 주소인설(酒小人說)」, 장유(張維, 1587∼1638) 의 필설(筆說)」 등 우리 고전의 훌륭한 수필들을 널리 알리는 일도 매우 긴요한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로 도자설(盜子說)」을 소개합니다.


 도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도둑의 기술을 다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도둑의 아들은 스스로 그 재주가 아버지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도둑질을 할 때마다 매번 그 아들이 먼저 들어가고 맨 나중에 나오되, 값싼 것은 버리고 값진 것만을  취했다. 귀는 먼 데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은 어두운 밤을 잘 살필 수 있게 익숙해져서  도둑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하루는 아들 도둑이 아버지 도둑에게 자랑삼아 말하였다.

「제 도둑 솜씨가 아버지의 도둑 기술에 못지않고, 제 기력은 아버지보다 더 강건하니, 이대로 나가면 앞으로 제가 이루어 내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아버지 도둑이 말했다.

「너는 아직 멀었다.」

 아들 도둑이 말했다.

「도둑의 도는 재물을 많이 얻는 것으로 공을 삼는 것인데, 제 공이 아버지보다 항상 배나 많고, 내 나이 아직 젊어서, 아버지 연령에 이르면 마땅히 특별한 방법이 생길 것인즉, 어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도둑이 말하기를 「너는 아직 멀었다. 내 기술을 가지고도 능히 겹겹이 쌓인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비밀스럽게 감추어 둔 것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차질이 생기면, 화가 따르기 마련이니, 이를테면 자취를 남기지 않고 찾아낼 수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족히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너는 아직도 멀었다.」고 하였다.

 아들 도둑은 아버지의 말을 수긍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밤에 아버지 도둑은 아들 도둑을 데리고 부잣집으로 가서 보물 창고를 털기로 하고 아들을 먼저 보물 창고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아들이 한참 보물을 챙기고 있을 때 아비 도둑이 창고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그고 일부러 문을 흔들어 주인을 깨워 놓고 사라져 버렸다. 주인이 집에 도둑이 든 줄 알고 밖으로 나와 봤으나 창고 자물쇠가 다름없이 잠겨 있었으므로 주인은 도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아들 도둑은 창고 속에서 도망쳐 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손톱으로 문짝을 긁어서 쥐가 갉아먹는 소리를 냈다. 이윽고 주인이 말하기를 「쥐가 창고 속에서 보물을 갉아먹는 모양이니 이를 쫓아 버려야겠다.」고 등불을 켜 들고 창고 문 자물쇠를 열었다. 그 순간 아들 도둑은 밖으로 뛰쳐나와 달아나는데, 주인 집 식구들이 모두 나와 쫓으니 도둑의 아들이 다급하게 되자, 연못 가장자리로 도망치면서 돌멩이를 못 속으로 던졌다. 쫓던 무리의 한 사람이 「도둑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고 소리치니 모두 물에 빠진 도둑을 잡으려고 못 주변을 막고 물속을 살피고 있는 사이에 도둑의 아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둑의 아들이 아버지 도둑을 원망하며 말하기를 「짐승도 제 자식을 비호할 줄 아는데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를 그렇게 곤경에 빠뜨립니까?」 하니, 아버지 도둑이 말하기를 「이제는 네가 마땅히 천하에서 제일가는 도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서 배우는 것은 한도가 있는 법이지만 제 스스로 터득한 것은 응용이 무한한 것이다. 하물며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은 뜻을 더욱 굳게 만들고, 한층 더 성숙하게 되는 것인즉, 너를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한 것은 오히려 너를 나중에 편안하게 해 주려는 것이고, 함정에 빠뜨린 것은 너를 위험에서 구해 주기 위해서였다. 네가 만약 창고 속에 갇히고 추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쥐 긁는 시늉과 물속에 돌을 던지는 기발한 꾀를 낼 수 있었겠느냐? 네가 곤경에 부딪쳤기 때문에 지혜가 생겼고, 변화하는 상황에 즈음하여 기발한 술수가 생겼으니, 지혜란 한번 열리면, 다시는 현혹되지 않는 법이니, 이제 마땅히 천하를 독보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도둑의 아들은 그 뒤에 과연 천하에 적수가 없는 도둑이 되었다.

                                ( 06.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