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 체험기 3)
책의 나라, 일본
이 웅 재
자유 투어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하루를 우리는 우리의 일본어 통역을 맡았던, 일본 상지대(上智大) 대학원 신문학(新聞學) 전공 박사후기과정에 다니는 채성혜(蔡星慧) 씨를 앞세워 지하철을 타고 신주쿠[新宿, Shinjuku]로 향했다. 우리가 묵고 있는 Royal Hotel이 있는 이케부쿠로[池袋, Ikebukuro]에서 신주쿠까지의 요금은 150엔. 동경을 다녀왔다면 으레 일본에서 제일 높은 산인 3,776m의 후지 산[富士山]엘 올라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책방순례를 나선 것이다.
키노쿠니야[紀伊國屋, kinokuniya]서점은 우리나라 교보문고와 비슷한 곳으로 일본 제일의 대형서점이다. 교보문고에도 웬만한 책들은 거의 구비되어 있는 편이지만, 이 키노쿠니야서점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주로 사진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서적들을 둘러보았는데, 정말로 없는 책이 없었다. 예를 들어 한류(韓流) 스타 배용준에 관한 책만도 수십 종이 구비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한국 연예인들과 관련된 책들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의 마지막 5분간의 일마저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일본인들, 모든 것이 책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본이 또다시 부러워졌다.
출판 관계 회사들은 긴자[銀座, Ginza] 안에 많다고 했지만, 키노쿠니야의 책들을 구경하는 데만도 반나절 이상이 소요되어서 정작 긴자엔 가보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의 일본행은 거의 관광이 빠진 여행이었다고 하겠다. 8층에 올라가 한자능력검정시험과 관련된 책을 살펴보았더니 10여 종, 모두 사기에는 역부족이라 느껴져서 그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의 1종 10권만 샀다. 가격은 6,200엔, 이곳에서는 5% 정도의 소비세 등 내세(內稅)를 내어야 해서 총 가격은 6,500엔이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 배가 고파 World Cafe에 들어가 간단한 회를 곁들인 메밀국수를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몇 년 전통의 집이었던지는 지금 생각이 나질 않으나 상당한 연륜의 전통이 있었던 집으로 기억된다. 일본 음식점들의 오랜 전통 얘기는 누구나 흔히 듣던 얘기라서 새삼스러운 점은 없었지만, 실제로 그런 전통을 지닌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어보게 되니, 그 깊은 맛이 은은히 배어옴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라면가게를 하다가 좀 잘되면 한식집으로 바꾸고, 그 한식집이 또 좀 괜찮게 되면 다음으로는 레스토랑으로 간판을 바꿔 달지만, 일본에서는 라면가게가 잘 되면 그 집은 계속 라면가게로 남아 오랜 전통을 자산으로 장사를 계속하는데, 글쎄 어느 쪽이 바람직한 걸까? 하도 부러워서 우문을 던져 보았다.
점심을 먹은 후엔 전자상가와 액세서리점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역시 장사에는 뒤지지 않는 소완을 지닌 일본인들임을 충분히 인지하게 되었지만, 뒤에서 얘기되듯 나도 일본인 초등학생들처럼 지갑을 열지 않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오니 벌써 저녁 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호텔 바로 옆의 2층에 한식집이 있는 것을 몰랐었다. 상호는 채가정[彩伽亭, Saikatei]. 신세를 지는 우리가 내야할 것인데, 우리의 통역을 계속 맡아해 주던 채성혜 씨가 굳이 내겠다고 하여 예의가 아니게 대접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녀도 벌써 일본인을 닮아 선행을 베푸는 것일까? 나중 귀국 후 감사하다는 e-mail을 보냈더니 오히려 자기가 일본 관광을 못 시켜 주어서 미안하고 또한 고맙다고 답장이 오기도 했다.
돌솥비빔밥이 1,300엔이었고, 술 한 잔 안 할 수 없어 진로소주를 시켰더니 그것도 1,300엔이었다. 이 식당은 그래도 싼 편이란다. 보통은 1,500엔이라는 것인데, 외국엘 가면 어디나 다 비슷했다. 그렇게 비싸지는 이유는 양주와 똑같은 관세를 물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다른 술보다 진로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일본엘 왔으니까 예전에 마셔보던 일본 술 산토리를 마셔볼까 했지만, 가는 곳마다 산토리는 눈에 띄질 않았다. 어쨌든 우리 돈으로 따져 13,000원 정도의 진로소주를 마시면서, 귀국하면 좀더 진로소주를 많이 마셔주어야지 하는 비장한 각오(?)까지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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