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 체험기 4)
부러운 나라, 일본
이 웅 재
나리타[成田] 공항에 착륙하기 전부터 나는 무언가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를 가나 느껴지는 것이었다. 무얼까? 무엇이 그런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주는 것일까? 쉽게 집어낼 수 없었던 그것은 바로 잘 가꾸어진 숲이었다. 동경엔 숲이 많았다.
서울 인근에 있는 국립공원 북한산도 훼손시켜 터널을 뚫겠다며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산의 정기를 끊어 놓았다고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을 개탄하던 사람들이 산허리를 뚫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처음엔 아무 언질도 없이 뚫으려고 하는 산의 양쪽 끝부분까지 도로를 개설해 놓은 다음, 그제서야 산을 관통하는 터널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그것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을 경제 원리로 몰아붙이는 개발론자들. 우회도로를 만들면 엄청난 돈이 더 들어야 한다고 대중을 유도한다. 애초부터 우회도로를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터이다.
또 한 가지, 계산상으로 따지더라도 사실은 관통 고속도로를 뚫는 일이 돈이 더 많이 들 수도 있다. 국립공원에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훼손해도 과태료 3,000만 원을 물어야 하는 것이 현행의 법이다. 그렇다면 왕복 10차선의 관통도로를 뚫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풀과 나무가 훼손될 것인지, 그것을 계산해내는 사람은 하나도 보질 못했다. 그건 분명 우회도로를 낼 때 들어가는 비용보다도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말이다.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왜 외면하는지? 동남아 일대를 휩쓴 쓰나미의 엄청난 피해도 해변 휴양지 개발을 위해서 많은 숲을 훼손시켜 버렸던 대가임을, 왜들 고의적으로 모르는 체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동경 시내 곳곳에 있는 푸른 숲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울러 그들의 시민정신이 부러웠다. 길거리는 어느 곳을 가나 버려진 쓰레기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습도가 높고 비도 많은데다가 이처럼 시민의식이 깨어 있으니 흰 Y셔츠를 일주일 동안 계속 입어도 별로 더러워졌음을 느끼기가 힘들단다.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으랴? 차라리 아무 곳에나 버려지는 쓰레기는 치우기라도 쉽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의 눈이 잘 닿지 않는 곳에다가 쓰레기를 꼭꼭 숨겨놓기를 좋아한다. 겉으로나마 시민의식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내 알 바가 아니다.
한편 일본인들은 95% 정도가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태국과 같은 동남아 국가들처럼 가는 곳마다 불교적 색채를 짙게 풍기지는 않는다. 생활 속의 불교라고나 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있는 절들도 그저 번화가의 한 쪽에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절에서 고기까지도 구워 먹는다고 한다. 이번 방일 중에는 대본산 성전산 신승사[大本山 成田山 新勝寺]와 천초사[淺草寺] 두 곳을 둘러보았는데, 앞의 절에서는 가는 곳마다 봉새전함(奉賽錢涵)이 있어 눈길을 끌었고, 뒤의 절에는 아예 길 양쪽으로 기념품 등의 상가가 마치 인사동 거리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러한 생활 속의 불교 때문일까? 그들은 선행 베풀기를 좋아한단다. 그들은 자기가 베푼 선행을 언젠가는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죽은 다음 후손이 받게 되는 복이 아니라 살아서 자신이 되돌려 받는다고 믿는 마음. 그러니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언제고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예금과 같이 통장에다가 예치하는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인사는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도 훨씬 허리를 많이 굽히는 편인데, 눈으로만 하는 인사, 고개만 까딱하는 인사, 어깨를 함께 굽히는 인사보다 더욱 정중한 인사가 허리를 깊숙이 굽히는 인사라 할 것이니, 그들은 그만큼 상대를 존중하는 기본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상대를 아끼는 인사는 마음으로 하는 인사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그런 인사를 한다는 자세를 지녀야지만 선행을 베풀 수가 있을 것이다.
현찰처럼 꺼내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행하는 선행, 그러니까 그들은 자식에게 기댈 필요가 없다. 자신이 해 보고 싶었던 일을 자식이 해 주기를 기대하는 우리 한국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죽을 때 제일 나쁜 유언이 “나처럼 살지 말라.”는 것이라니 하루를 살아도 성실하게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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