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씩 7개의 공간을 돌며 이승과의 인연을 정리한다는 중천
이 웅 재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동이로 들이붓듯 좍좍 내린다. 이 영화는 아마도 해피엔드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물은 그 이미지가 눈물로 연결될 수 있는 소재이니 말이다.
내리퍼붓는 빗발 속에 여자 하나가 귀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여기 정우성 분의 이곽이 등장하여 신출귀몰한 칼 솜씨를 보여주며 여인을 구해준다. 앞으로도 이처럼 아주 시원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실제로 이 영화는 CG에 의지한 작품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장면들이 가공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웅장한 스펙터클로 전개된다. 그것을 보기 위해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간인 12월 23일, 11시 반쯤 삼성동 메가팩스 영화관을 찾았다.
남주인공 이곽은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때문에 엉뚱하게도 사랑하는 연인 연화가 누명을 쓰고 죽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생명마저 위협을 받게 되자 왕실 소속의 퇴마부대 ‘처용대’에 들어가 악귀들을 퇴치하는 일에 전념한다. 그런데, 신이한 능력 때문에 늘 귀족들에게 견제당하던 처용대의 수장 반추(허준호 분)는 아내마저 간통당하는 일을 겪고는 반란을 도모한다. 세상은 언제나 그와 같이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인가 보다. 이곽은 개인적 이유 때문에 피를 불러야 하는 쿠데타에 반대하여 처용대를 떠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여인을 구해주게 된 것이다.
다음날 동네 사람들은 이곽에게 술을 대접한다. 푸짐한 술상에 나도 모르게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관객들은 판타스틱한 영상 속으로 흠뻑 빠져든 터라 침 넘어가는 소리쯤은 괘념하지 않는다. 다행이었다.
다시 술 마시는 장면, 동네 건달 몇 명이 갑자기 표정을 바꾼다. 그들은 현상수배 방문(榜文)를 꺼내 보더니 처용대 출신인 이곽을 잡으려고 한다. 이곽은 거기서 도망쳐 어떤 절로 들어간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그는 원귀들의 반란으로 깨져버린 결계를 통해 중천으로 빠져든다. 환생을 기다리는 죽은 영혼들이 7일씩 7개의 공간을 돌며 죄의 냄새를 씻고, 이승과의 인연을 정리한다는 곳이다. 49일이 지나면 천상으로 오르게 된다던가? 49재를 지내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했다.
그곳에서 그는 연화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는 이승에서의 기억을 지워버린 채 중천을 지키는 하늘의 사람인 천인(天人) 소화(김태희 분)가 되어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랑이란 늘 그렇게 어긋나는 사연을 지니는가 보다.
한편 원귀들의 반란으로 중천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모두 피해라!”
검은 복면을 쓴 반란군들이 새까맣게 몰려오자 소화는 모든 중천의 존재들을 안전하게 피하라고 한다. 위급한 상황이다. 이곽은 그녀를 보호한다. 칼에 맞은 반란군들은 그 형체가 산산히 부서진다. 귀신인 까닭이다. 영혼인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에는 형체가 남지 않는다.
소화는 인간에 가장 가까운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 그래서 이승의 통로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영체 목걸이를 지니게 되었고 그 때문에 반란군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 상황은 정말로 딱하게 돌아간다. 반란을 일으킨 원귀들은 이곽이 이승에서 형제같이 지내던 퇴마무사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이승으로 돌아가서 자신들의 원통한 죽음에 대해 보복을 하려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갈등을 초월한다. 이곽은 죽은 자들의 공간에 살아있는 몸으로 존재하는 일 자체가 위험한 줄 알면서도, 소화를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기다려, 내가 갈게.”
위기마다 달려가는 이곽. 그러나 소화에게는 이승에서의 기억이 없다.
“마음을 읽는다고 했니? 그럼 내 마음을 읽어….”
“니가 보는 난 기억일 뿐이야.”
그러나 인연이란 끈질긴 것, 그녀는 이곽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나 처음이야, 산 사람이랑 손잡아 본 거….가슴이 뛰는 거 느껴본 적도….”
그렇다. 사랑은 그렇게 손을 잡아보는 거다. 그리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껴보는 것이다. 서로 손을 잡는다는 것은 하나가 되기 위한 행동의 시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손을 잡아보라. 당신들은 곧 하나로 될 것이다. 마음도 하나, 몸도 하나,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거액을 들인 영화답게 웅장한 건물, 이국적인 경치와 같은 영상미가 뛰어났다. 불꽃 튀는 칼싸움 장면은 물론이거니와, 은은한 불빛이 일렁이는 호수 위에 꽃잎으로 가득 쌓여있는 나룻배가 떠있고, 거기에 이곽과 소화가 함께 타고 있는 장면도 버리기 아까운 명장면이다. 어디 그뿐이랴? 반복되는 싸움 장면에 식상할 때쯤 아름다운 미녀 김태희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는 것도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다시는 널 혼자 두지 않겠어.”
사랑이 다시 살아 움직인다. 사랑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가능한 한 ‘함께’지내는 일이다. 때문에 이곽은 반추와 대결한다.
사랑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의 몫이다. 신의 세계에서는 사랑이 따로 필요할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한 세계에서 서로 애태우며 그리워할 사랑 같은 것이 무엇 때문에 필요할 것인가? 때문에 나는 살아있는 이 순간,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죽어가는 이곽에게 키스로써 영기를 주어 고통과 번뇌의 세계, 인간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사랑의 완성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 맨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억수로 쏟아지는 비. 영화는 이곽만이 다시 이승으로 가게 되는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아…, 김태희는 언제나 이승으로, 우리의 곁으로 돌아올 수가 있을까?
영화관을 나서는 마음은 그래서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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