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1) 로얄살루트 블랙라벨

거북이3 2007. 2. 17. 22:57
 

(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1)

       로얄살루트 블랙라벨

                                                     이   웅   재

 내 별명은 거북이다. 길 잃은 거북이다. 그러한 별명이 붙은 사연이야 물으나마나 자명(自明)하다. 매사 남보다 느리고 곧잘 방향감각을 잃기 때문이다. 길 잃은 거북이를 본 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길을 잃으면 누구나 허둥지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북이는 다르다. 거북이는 길을 잃은 것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용궁을 떠나 육지 구경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본성 그대로 느릿느릿, 엉금엉금 기어디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는 거북이에게도 6시간 동안이나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일은 지겨웠다.

 시간이란 한 순간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를 않는다. 시간이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흐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이라야 제격이다. 그런데, 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 보면 시간도 머물러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같은 공간에서의 머무름은 따분할 수밖에 없다. 아니, 따분함을 넘어 지겨워지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씨엠립(Siemreap)까지 가는 시간은 6시간이었다. 12시간, 14시간의 비행도 해 보긴 했지만, 그럴 적마다 지겨움에 절어 공연히 여행길에 오른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문해 보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순식간에 원하는 장소에까지 데려다 주던데…. 현대 과학도 아직까지 아라비안나이트에는 한참이나 뒤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겨워서 위스키도 시켜 마셔보고, 화장실에도 들락거려 보지만 별무효과였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쿨쿨 한잠 자는 일인데, 웬 일인지 잠은 오지 않는다. 밤 11시가 되어가는데도 잠이 올 기색은 전혀 없는 것이다. 기내로 들어오면서 집어가지고 와서 읽었던 신문을 다시 펴들고 읽어 본다.

 그러나 “대법, 224건 재심 대상 선정”이란 제목에 있는 224건이란 말은 한두 건도 보태지거나 줄어들지를 않고 있었다. 대선 여론 조사의 ‘이명박>박근혜>손학규’도 요지부동이다. 잠시만이라도 그 순위가 바뀐다면, ‘웬 일이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고 심심하던 마음은 멀리 머얼리 사라져버릴 텐데…. 그러한 변화를 바라는 건 나보다도 박근혜, 손학규 씨가 더할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도 아니고 인쇄된 글씨는 변화를 모른다. 잉크 물이 마르고 난 다음에는 찢어버리든가 태워버리면 모를까 그 내용이 조금도 달라지지를 않는 것이다. 그건 인쇄물의 단점이자 또한 장점이기도 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처럼 지겨울 때는 제발 좀 변화를 보여주었으면 싶은 생각이다.

 좌석 앞쪽 그물망 속에 들어 있는 기내 판매품 선전용의 ‘Sky Shop’을 꺼내든다. 표지엔 ‘The Heart of Cognac, REMY MARTIN XQ’란 글씨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용을 훑어보니 REMY MARTIN XQ보다 오히려 ROYALSALUTE(38YEARS OLD)가 USD 399로 가장 비쌌다. 국내 시판가로는 1,650,000원이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곁들였다. ROYALSALUTE 21년산은 어쩌다 한 번씩 마셔보았는데, 그 중에서는 Blue Label이 조금 더 비쌌다. 그런데 여기서 우아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38년산은 Black Label이었다. 앞으로는 검은 것을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되겠다. 조선조 때 이직(李稷)이 지은 우리의 옛 시조에도 있잖은가?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을 손 너뿐인가 하노라.”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겉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이제 조금만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얼굴마저 검은 사람들의 나라엘 도착하게 되질 않는가? 가급적 선입견은 버리고 캄보디아를 체험하기로 하자.

 이번 여행은 입출국시 인솔 가이드가 없는 여행이라서 조금은 불편했다. 그러나 가이드만 믿고 다니는 여행은 초등학생의 수학여행과 다를 바 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귀찮기 짝이 없는 신고서 등을 작성하면서도 이제 새로 중학생이라도 된 듯한 느낌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캄보디아 상공엘 도착하게 될 무렵, 분위기에 맞춰 이어폰에서는 현인의 ‘고향 만 리’가 한껏 애조를 띤 채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을….”


 공항에 내려서 숙소인 LIN RATANAK ANKOR HOTEL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가 캄보디아에 대한 일장 설명을 한다.

 캄보디아는 일인당 국민소득 약 300달러, 아시아의 최빈국의 소망을 드러내듯 국토의 모양이 밥그릇을 닮았단다. 공무원 월급이 30달러라니 하루 일당 1달러를 벌어도 괜찮은 수입에 해당하는 벌이이니 맨발의 어린아이들이 ‘원 달러!’를 외워대며 관광객들을 상대로 손을 벌리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1960년대에는 두 나라의 국민소득이 거의 비슷했다고 하니,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게 생긴 국토의 남단 부분을 제외한 삼면 거의가 우리나라의 태백산맥과 비슷한 험난한 산악지대인데다가 국토의 대부분은 황토로 이루어져 있단다. 당연히 깨끗한 물이 귀한 나라, 호텔에서 제공되는 생수는 냉장고 밖에 놓여 있는 500ml짜리만 이용하란다. 냉장고 안의 것은 2$의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 그리고 수돗물은 절대로 마시지 말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수인성 질병률이 가장 높은 곳 중의 한 곳이 여기이고, 아파서 병원엘 가면 병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다 링거 한 병으로 치료 끝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당분간 로얄살루트 블랙라벨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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