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3) 신의 저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거북이3 2007. 2. 19. 10:23
 

(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3)


        신의 저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   웅   재

 

 드디어 앙코르와트에 입성하다. 크메르 왕국 중에서 앙코르 왕조의 흔적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앙코르와트는 힌두의 소우주를 본뜬 것이란다. 5개의 첨탑은 세계의 중심으로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성스러운 산인 메루(불교식으로는 수미산)의 다섯 봉우리를 의미하며 둘러싼 성벽은 장대한 히말라야산맥을 나타내고, 성벽바깥의 해자는 깊고 넓은 신화 속의 대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현실적으로는 외적을 막기 위한 방어용 호수로서 여기에 악어들을 풀어놓았었다고 한다.


1850년 6월, 프랑스인 가톨릭 신부 뷰오와 원주민 신자 네 사람이 며칠째 밀림 속을 헤매고 있었다. 쓰러진 고목, 전진을 방해하는 덩굴, 느닷없이 머리 위로 툭툭 떨어지는 거미, 발밑으로는 우글거리는 뱀, 이리저리 나뭇가지 사이를 휙휙 날아다니는 원숭이, 지축을 흔드는 듯한 코끼리들의 울음소리…. 그들은 밀림 너머의 마을로 선교하러 떠났다가 길을 잃었던 것이다.

 공포와 절망으로 탈진한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야트막한 구릉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던 신부의 눈앞에 언뜻 커다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석양 노을에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돌탑에 새겨진 부처 얼굴이었다.

 좀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바라보자 밀림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광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수없는 탑과 궁궐들이 늘어서 있는 폐허가 된 도시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에 홀린 것으로 여겨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원주민들과 함께 신부도 거기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프랑스로 돌아간 뷰오 신부는 그 밀림 속 도시 얘기를 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그가 허깨비를 본 것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5년쯤 뒤, 프랑스의 탐험가이며 생물학자인 앙리 무어 박사는 우연히 “진랍 풍토기”라는 옛날 책 한 권을 얻게 되었다. 중국인이 쓴 인도차이나반도에 대한 역사책이었다. 인도(India)와 중국(China) 사이에 있다고 해서 인도차이나라고 하는 이 반도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캄보디아에 대한 기록이 그를 사로잡았다.

 ‘캄보디아는 2,000여 년 전 세워진 나라로서 9세기경 나라가 크게 부흥했었다. 그때의 나라 이름은 ‘진랍(眞臘)’이었고, 크메르족이 다스렸다. 도읍을 왕국의 한가운데 언덕인 앙코르에 세우고 도시의 뒤쪽으로 엄청난 사원을 지었는데 그 이름을 앙코르와트라고 한다. 이 왕국은 13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5세기에는 아주 사라져 버렸다.’

 그 기록을 보는 순간, 무어는 5년 전 화제를 모았던 뷰오 신부의 ‘밀림 속 도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신부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캄보디아 역사책에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은 밀림 속 도시를 찾아 캄보디아 왕국의 역사를 밝히기로 결심한다. 1861년 1월9일 무어는 탐험대를 이끌고 밀림으로 들어갔다. 톤레샵 호수를 건넌 뒤 한 마을에서 탐문하니 ‘창’이고 하는 젊은이가 옛 전설을 말해 준다.

 “대가리 일곱 달린 뱀이 밀림을 다스리고 있을 때 거인들이 성을 쌓았지요.  그리고 온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탑들을 세웠습니다. 거인들의 그러한 오만을 징계하려고 신이 저주를 내려 숲으로 뒤덮어 버렸답니다. 그래서 숲속에는 수없는 유령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곳에 가면 안 됩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곳에 다녀온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무어는 그 미지의 세계를 탐험했고, 그 탐험 보고서를 프랑스 잡지에 발표했다. 신의 저주가 풀리려는가? 1351년, 오랜 동안 크메르족에게 노예처럼 시달리던 샴(태국)족 침입으로 멸망하여 밀림 속에 방치되어 있던 앙코르와트가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어 자신은 얼마 뒤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등지게 된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도시 씨엠립(Siem Reap)의 씨암(Siam)은 곧 샴족을 가리키는 말이요, 립(Reap)은 크메르말로 ‘쳐부수다’란 의미로 ‘샴족에 의해 점령된 곳’이란 뜻이란다. 그 점령된 씨엠립을 버마(지금의 미얀마)가 침공하기 시작해 200여 년 동안 전쟁을 치르다 보니 샴족의 아유타야왕국(태국의 전 왕조)으로서는 앙코르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프놈펜으로 천도한 앙코르왕국을 이은 크메르왕국 역시 참파왕국(베트남의 전 왕국)의 침공으로 전쟁을 치르느라고 앙코르를 돌아볼 겨를을 가지지 못하다 보니, 앙코르와트는 어쩔 수 없이 수세기 동안 잊혀진 도시, 저주받은 도시로 역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상은 네이버 지식iN의 alooo123 님 ‘버려진 도시, 앙코르의 발견’을 이 글의 분량에 맞게 윤문한 것임.)

 신의 저주는 이후로도 프랑스의 식민지로, 월남전의 확대로, 또 킬링필드의 대학살, 테러, 쿠데타, 내전, 외세의 개입과 지속적인 국정 불안 및 경제파탄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앙코르와트에 들어서는 내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건물 곳곳에 나 있는 전쟁의 흔적인 총탄 자국을 보면서는 얼핏 철원 지방에 있는 노동당 당사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행객들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일본사람들은 이제 악착같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는 다리품의 여행 스타일은 졸업해 버리고 풍광이 뛰어나고 기후가 좋은 곳으로 떠나는 유럽인 스타일의 휴양 개념의 여행으로 바뀐 듯하였다.

 한편 앙코르와트가 대대적인 복원 작업으로 들어가게 되어 한 동안 여행객들로부터 접근이 금지될 것이라는 소문은 헛소문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말했다. 현재로서는 가장 커다란 외화벌이인 이곳의 관광을 금지하는 일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앙코르와트는 수많은 방문객으로 인하여 계속 오염되고 파괴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신의 저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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