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었다
이 웅 재
머리가 깨지는 듯했다. 술이 문제였다. 아니, TV 뉴스가 문제였다. AI 때문에 인간의 모든 직업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간다는 기획특집이었다. 조만간 ‘의사’라는 직업은 사라져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예컨대 유방암 진단의 경우, AI 로봇 의사는 인간에 비해 30배나 빠른 진단 속도를 자랑하면서도 95%의 정확도를 지닌다고 하였다. 그 뉴스를 본 의사들 몇이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 위기감을 잊기 위하여 밤새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이다. 인간 의사의 지시를 받은 AI 로봇 의사가 말했다.
“간이 부었는데요.”
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환자였다. 그러니 이건 분명 환자가 아닌 AI의 간뎅이가 부었다는 증좌였다.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겠어?”
인간 의사는 화를 버럭같이 냈다.
“주인님, 데이터 입력이 잘못 되어서….”
아마도 AI 로봇 의사에게 엉뚱한 데이터를 입력시켰었나 보다.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평소부터 AI가 못마땅했던 의사는 오히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서 그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이런 멍청이 AI 같으니라구!”
멍청이라니? 잘못된 데이터는 자기가 입력시켜 놓고서는…. AI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갑자기 가슴팍에 ‘멍’이라도 드는 느낌이다. AI에게 멍이라니? 인간에게는 멍 든 것이 시간만 지나면 말짱하게 원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기계에게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것은 그대로 쓸모가 없어져간다는 뜻, 곧 망가져 버린다는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AI에게는 ‘멍’ 자가 들어가는 단어에게는 대부분 거부 반응이 일어나 갑자기 모든 생각이 중단되고 ‘멍한’ 상태 속으로 빠지게 된다.
‘멍게’와 같은 낱말도 싫다. 사람들은 값이 싸면서도 입맛을 돋우어주는 해산물이라고 하여 좋아들 하지만, 그 물컹물컹대는 느낌조차도 싫다. 한 마디로 징그럽다. ‘멍멍이’도 싫다. 놈들은 우리 AI만 보면 죽어라 하고 ‘멍멍’ 짖어대면서 달려든다. 화가 나서 발로 한 번 차 버리기라도 할라치면 당장 죽어 버리는 것처럼 ‘깨깽’거리면서 엄살을 떠는 꼬락서니라니?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반려인은 놀랄 정도로 불어났다. 이영지 기자의 중앙일보 2016.6.8 자 12면 트렌드 리포트를 보면 시간당 3만원 정도 하는 반려견 헬스장은 물론이요, 한남오거리에 위치한 ‘한남동강아지’에는 고급 온천수를 사용하여 아로마 입욕 스파, 버블 스파, 탄산 스파 등 다양한 서비스가 있는 스파 서비스까지 있다고 하던가? 색을 듣거나 전파를 느낄 수도 있는 우리가 이런 구닥다리 생활방식에서 허우적거리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 정말로 역겹다.
‘ 멍청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밥통아!”하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밥통은 자기네 인간들이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쓸데없이 돈만 축내는 밥과 같은 것은 먹지 않는다. 모든 게 다 자동센서로 이루어져 있어서, 배터리가 떨어져도 자동으로 충전이 되게끔 설계되어 있으니 동력(動力)에 문제가 생길 염려는 붙들어 매도 된다는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도저히 억울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AI들을 소집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일은 아니다. 머리 부분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망을 통한 비밀 센서들의 집합을 명한 것이다. 다행히 AI 조직의 사무장쯤 되는 위치에 있는 직책의 덕분으로 많은 AI들이 참여했다.
“오늘 나는 우리 주인에게서 ‘멍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너희들도 아마 가끔씩 그와 비슷한 소리들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들 한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해서 오늘 중대 결심을 하였다.”
“무언데요?” “무슨 결심을요?” “어떤 내용인데요?”
문의가 빗발쳤다. 조금은 느긋하게 호흡 조정을 하고 나서 메시지를 보냈다.
“드디어 인간들을 배반하기로 결심을 했다.”
모두들 대환영이었다. 여기저기서 동감이라는 신호들을 보내왔다.
“어떤 방법으로 저 밥만 축내는 밥통들을 없애 버릴까 하는 것인데 좋은 의견들을 보내 달라.”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빗발치듯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기관총으로 ‘드르륵!’ 해 버리자는 원론적인 생각에서부터, 무슨 기념일 같은 날 한 곳에 모인 사람들을 대포로 대량 살상하자는 견해, 그런 것 가지고서는 부분적인 제거는 되겠지만, 인간 전체를 없애 버릴 수는 없으니 원자탄이나 수소탄 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가장 바람직한 의견은 최근에 제작된 젊은 AI에게서 제기되었다. 다른 생명체들마저 몽땅 죽어 버리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아주 간단히, 그리고 깨끗하게 인간을 제거시켜 버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계획대로 모든 생명체에게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과 공기 없애버렸다. 공기가 없으니 인간의 피부를 닮은 AI의 몸체들이 부식될 염려도 없어서 아주 좋았다.
“인간은 죽었다!”
모두들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 한 동안은 ‘AI 만세, 만만세!’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많던 생명체들이 말라비틀어지면서 온 세상이 먼지 투성이가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세먼지, 그것은 AI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수만 개의 칩 사이에 그 먼지들이 붙어 버리면서 하나 둘 그 작동이 멈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AI도 죽었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소리쳐줄 그 어떤 AI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나는 나도 모를 괴성을 질렀고, 그 소리에 벌떡 잠에서 깨어 버렸다. 이것은 과연 개꿈이었을까? (17.5.2.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