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 세 토막
이 웅 재
이
아내는 내가 무얼 조금만 잘못해도 늘 퉁박을 준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한데다가 귀찮기도 해서 이제까지 입던 여름옷을 입고 외출을 감행하다가는 계절감도 모르는 옷을 입었다고 댓바람에 구박이요, 머리가 좀 길어졌다든가 면도를 하기가 성가신 느낌이 들어서 게으름을 피워도 사람이 왜 그렇게 깔끔하지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지내느냐고 주구장창 타박이다.
아내는 초저녁 잠이 많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다. 말하자면 아내는 아침형 인간인데 나는 야간형 인간인 것이다. 아내는 나에게 해가 중천에 떠올라야만 일어난다고, 내게 툭하면 꾸지람이다. 늦잠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나는 늘 동작이 굼뜬 편이라서, 무슨 부부동반 모임 같은 데 나갈 일이 있어 늦기라도 할라치면 전적으로 내 탓으로 돌린다. 어쩌다가 백화점 같은 곳에 가서 싼 물건 한정 판매를 하면서 줄을 세울 때에는 품절이 되어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간당간당한 자리에 간신히 가서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나무람을 아끼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매일같이 저녁을 먹은 후에 내가 손수 담근 과실주를 마신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인격’이 나올 수밖에는 없는 일인데, 아내는 제발 그 뱃살 좀 빼라고 질책이다. 술 안주로 땅콩 등 견과류 안주감을 옆에서 한 알 집어먹어 보고는 유효기간 날짜도 보지 않고 사 와서 쩐내가 난다고 야단이다. 늘 시답잖은 글 나부랭이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다 보니, 방마다 여기저기 책들이 흐트러져 있다고 구두(??=핀잔)요, 내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밥 먹으라고 할 적에 빨리 안 나가면 두고두고 업시름이다.
간혹 아들 내외가 찾아와서 모처럼 고급 음식점에 가서 비싼 요리를 시켜먹을 때, 내 딴에는 가격 대비 맛이 ‘별로’라고 혼자 투덜거리다가는 여축없이 지청구를 맞아야 한다. 그럴 땐 가끔 나도 반성을 한다. 자식들의 성의를 그렇게 무시하는 일은 애비답지 못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런 것은 어쨌든 한 마디로 아내는 나의 모든 것에 짜증을 내는 맛으로 살고 있는 듯싶다. 하기야 점잖은 체면에 어디 가서 남에게 그런 핀잔을 주면서 지낼 수가 있으랴? 남을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상대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은가? 그래서 나는 깔축없이 참는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온다고도 했으니, 앞으로 허구헌날 복 받을 일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가끔은 마음이 영 개운찮을 때가 있다.
어제의 일만 해도 그렇다. 휴대폰 사용 요금 청구가 다른 때보다 좀 많이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는 혼잣말로 투덜거렸는데, 그런 걸 못 들은 척 그냥 지나갈 아내가 아니다. 무언가 잘못 건드려서 그렇게 된 게 아니냐는 힐책이었다. 해서 설왕설래하다가, 그러지 않아도 휴대폰을 바꿔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이기에 급기야는 집 근처에 있는 유명 회사의 휴대폰 대리점에까지 동행을 했다.
왜 이달에는 평소보다 요금이 많이 나온 것이냐고 물었더니, 약정기간이 지났기 때문이란다. 약정기간인 24개월 지난 다음에도 늘 요금이 그전과 마찬가지로 나왔었다고 말했더니, 대리점 직원 왈,
“아아, 약정기간이 지나도 30개월까지는 약정대로 요금이 매겨집니다.”
그러면 아내, 미안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는다. 아무리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약자 앞에서는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요새 정치하는 사람들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나도 그런 아내의 고압적인 자세에 고분고분 동조하기로 했다. 그러지 아니하고 실세(實勢)에 맞먹으려고 하다가 구속까지 당하는 실세(失勢)들을 닮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약간 생각을 달리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내의 타박하는 말 몇 가지는 오히려 칭찬으로 듣겠다는 말이다.
멸치 똥 뺄 때나 고추씨를 뺄 때에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너무 느리다’는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 별명이 거북이인데…’ 하고, 그러면서 아내의 그 불만을 ‘꼼꼼하게 잘 했다’는 소리로 바꿔치기를 한다.
며느리들과 함께 김장할 때 아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상대방 목소리가 무척 컸다.
“난데….”
나는 며느리에게 아내가 듣지 못할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목소리만으로는 누군지 잘 가늠이 가지 않을 때,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많다든가 한 경우에는, 정말로 신경질 난다구…. 안 그러냐?”
며느리는 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눈치를 보낸다. 그러나 소심한 나는 ‘안 그러냐?’ 하는 말이 ‘그렇다’는 대답을 강요하는 소리는 아니었을까 싶어, 잠깐 뒤 후회를 했다.
아내가 말한다.
“모처럼 남편이라는 작자가 김장하는 걸 도와주긴 했는데, 평소에는 상당히 꼼꼼한 사람이, 하기가 싫었는지 너무 대충대충 하지 뭐냐?”
하지만, 나는 ‘나 때문에 예상 외로 빨리 끝낼 수 있었다.’는 소리라고 듣기로 했다.
그렇다. 아내는 절대로 나를 위해주는 척은 하질 않는다. 그런데 가끔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아침부터 갈치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아내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들딸들은 모두 시집 장가를 보내 분가시키고 남은 식구는 자기와 나, 두 사람인데 왜 세 토막을 굽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곤 나중에 왜 한 토막을 남기느냐고 짜증을 낼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17.11.24. 15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아쉬움을 사랑한다 (0) | 2017.12.21 |
---|---|
하루하루가 즐겁다 (0) | 2017.12.11 |
드디어 '이음새'가 날았다 (0) | 2017.11.12 |
아내 때문에 못 죽는 사내 (0) | 2017.08.19 |
앉으세요 (0) | 2017.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