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음새’가 날았다
이 웅 재
‘이음새’라는 새가 있다. 우리말 표기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고도 철저한 검증을 제1의로 삼는 전병삼 회장의 말에 의하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새란다. 멍청한 그 사전에서는 ‘이음매’라는 말로 바꿔 써야 한다고 박박 우기고 있더라나?
『이음새』 15집 표지에서 정의하는 말을 한 번 들어보자.
‘이음새’란 20세기 말에 출범한 모임으로 새 세기를 잇고 글로써 선후배 회원 상호간의 마음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서 자연과 인간,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감성을 연결함은 물론이요, 작가와 독자의 오붓한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명재 지도교수께서 내린 ‘이음새’의 정의이다. 새는 새이지만 날아다니는 새는 아니었던 것이다.
2017. 11. 11. 『수필문학사』 회의실에서 건네받은 『이음새』 15집은 여느 때보다도 묵직했다. 도저히 날 수는 없으리라 여겨지는 무게였다.
책을 펴 들었다. 「어머니를 그리며」란 글이 맨 처음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 어머니는 항상 그리운 존재이지. 글을 읽어보니, ‘어머니’라기보다는 ‘어머님’의 얘기였다. 시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갓 시집간 새댁은 청소를 하면서 장롱 아래 있던 휴지를 발견하고 쓸고 쓸어서 버렸다. 그런데 그 휴지들은 좀도둑이 많았던 당시에 장롱 속보다는 안전하리라고 여겨서 종이에 싸서 보관하던 시어머니의 패물이었다고 했다.
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고리를 쓰레기통에 버렸다.…흐르는 땀방울에 거추장스러워진 귀고리와 목걸이를 풀어서 냅킨에 싸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고리를 잃어버린 지은이는 옛 일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한다.
어머님 손에서 영롱한 빛을 내던 금가락지의 산호와 수정, 호박과 보랏빛 스타의 그 큼지막한 알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몸에 지녔던 패물을 두 개만 잃어도 이렇게 밥이 안 넘어가는데, 몽땅 잃은 그 상심을 어머님은 어떻게 달래셨을까.…돌아가실 때까지 내 앞에서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으셨다.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늘 웃으시던 어머니, 몹시 그립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
“2000만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잃고 「어머니를 그리며」란 글 한 편을 얻었으니, 이 글은 더할 수 없이 고귀한 글이 아니겠습니까?”
그랬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를 그리며」라는 글 한 편의 가격이 결정되었다.
다음으로 눈을 사로잡은 글은 「토토 씨가 하는 섹스법」이라는 아주 야한 제목의 소설이었다. 토토 씨는 박준서 씨의 자호(自號)다. 얼마 전 방학역 근처 “의성한방재활병원”의 중환자실인 302호실로 문병을 갔던 일이 있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척추에 핀을 네 개나 박은 줄도 모르고…그런 몸뚱이를 하고도 아직 비몽사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햇볕이 짱짱한 어느날, 휠체어를 타고 조선족 간병인에게 밖으로 나가 섹스를 하자고 하였다.
조선족 간병인을 두 번째 만다던 날이란다. 간병인 리철순 씨는, 탈북 후 특별한 연고가 없는 중국에서 목숨과 신변을 보호받기 위해 중국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장애인, 그 남편과의 사이에서 역시 장애인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만은 데려오고 싶다고 하였다.
“한국 돈 천만 원만 있으면 데려 올 수 있습네다. 부지런히 돈 벌어야 합네다.”
하며, 리철순 씨가 토토 씨를 빤히 보고 말했다.
그날 밤 토토 씨는 리철순 씨를 소파에 던져 놓지 못하고 허리띠커녕 양말까지 신은 채로 혼자 잘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두고온 장애인 아이와 천만 원이 머리 안에서 떠나지 않는 것보다는 허리띠 아래 바지 속에서 영 연락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토토 씨의 섹스 장면을 훔쳐보기로 하자.
헐렁한 환자복의 바지를 사타구니까지 걷고…. 그녀를 향해 눈을 감고 기다린다. 그러면 그녀는 서두르는 법 없이 스캔하듯 나의 몸을 가늠하고 어루만지기 시작한다.…섹스는 끝났다. 눈가를 살짝 훔치고 간병인을 부른다. <토토 씨의 「햇볕과 섹스하다」에서>
한편, 문병 온 친척들은 토토 씨가 간병인과 함께 섹스하러 나갔다는 말을 듣고 역시 울다 웃다 하였고, 어느 친구는 동창들에게 얘기했다.
“갸가 차허고 심하게 부딪쳤다는디 머리도 많이 상한 개비여.”
이런 걸 두고 ‘기가 찰 일’이라고 하던가? 이러한 토토 씨, 햇볕과 많은 섹스를 한 덕분인지, 어제는 ‘이음새’ 동인 중 한 분의 딸 결혼식에까지 축하하러 현신을 했으니, 어찌 고맙지 아니하랴? 토토 씨, 이제는 햇볕과만 말고, ‘간병인과…’, 아니 그건 좀 과한 주문인가?
여하튼, 『이음새』15집은, 다른 분들의 글 때문에도 그렇지만, 이 두 분들의 엄청난 희생으로 그 ‘이천만 원’, ‘천만 원’의 거액에 짓눌리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푸른 창공을 훠얼훨 날아가는 기적을 이루었다.
이음새, 만세다. (17.11.12.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