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괄태충(括胎蟲) 퇴치기

거북이3 2021. 6. 24. 20:50

괄태충(括胎蟲) 퇴치기

이 웅 재

 

나는 괄태충(括胎蟲)과 함께 산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어 같이 산다. 놈은 베란다(실은 발코니)에서 내 허락도 없이 산다. 물론 셋돈도 내지 않고 막무가내로 산다.‘괄태충이란 이름은, ()처럼 생긴 놈들이 서로 짝짓기를 할 때의 모습이 꼭 서로를 묶어놓은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머리에 2쌍의 자루[]처럼 생긴 촉각(더듬이)이 눈[]처럼 붙어 있어서 일명 병안목(柄眼目)’이라고도 한다. 이 촉각으로 위험을 느꼈을 때에는 몸 전체를 둥그렇게 말기도 한다. 그 이름이 상당히 유식하게 여겨지는 놈이다. 놈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은빛 줄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고 만지면 미끌미끌한 게 기분이 되게 불쾌한 느낌이다. 놈들을 잡아 버리느라고 발코니 모기장 문을 열어놓고서는 깜빡하고 닫지 않은 일이 벌써 3번째나 된다. 파리, 모기 등이 들어온다고 아내가 질색을 하지만, 그래도 3번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지청구를 발하였으니,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라서, 스스로를 자책했다.

글쎄, 나 원 참, 또 잊어먹었네.”

그 말 한 마디에 아내의 야단치는 소리가 스르르! 제 굴 속으로 들어가는 뱀 꼬리마냥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늙었음을 무언 중 인정해가고 있었다.

 

괄태충은 농작물을 갉아먹는 놈이라서 농촌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놈들이 왜 우리 집 발코니에서 어슬렁거리느냐고? 우리 집 발코니에는 술독 위에 화분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술은 내가 매일같이 마셔야 하는 생명수(生命水), 그 위에 화분들을 놓아두면 화초들이 잘 자란다. 소나무가 좀 변변치 못하게 비실거릴 때면 영양제로 막걸리를 매달아 주는 것을 가끔 본 적이 있지를 않던가? 우리 집 화초들은 주인인 나를 닮아서인지 술 냄새를 맡으면 아주 싱싱하게 잘들 자라기에, 나는 화분들을 술독 위에 올려놓아 둔다. 그런데 어디서 묻어왔는지 바로 괄태충이란 놈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금세 득시글대면서 화초를 갉아먹기 시작을 했다.

 

, 이제는 놈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밝히자. ‘괄태충이니 병안목이니 하는 이름은 한자 이름이라서 얼핏 무슨 뜻인지도 알쏭달쏭하지만, 우리말로 부르면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다. 바로 민달팽이. 일반적인 달팽이와 다른 점은 껍데기가 퇴화되어 없어지고, 등에 연한 갈색의 막만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며, 등 부분에는 3줄의 검은색 가로선, 그리고 몸 전체에 불규칙한 검은 점이 나 있는가 하면, 아래쪽 배 부분은 회백색으로 되어 있다. 놈들은 나무나 풀 위에 올라가 먹을 부분을 치설(齒舌)이라는 기관을 이용하여 갉아 먹는다. 생식은 자웅동체이지만 짝짓기를 하여 번식한다. 짝짓기를 할 때에는 자신의 몸보다 7~8배 큰 생식기를 머리에서 내어 놓는다. 건조 한 곳을 지나갈 때에는 점액을 분비하여 몸이 잘 미끄러지게 하여 이동한다. 껍데기가 없는 민달팽이는 껍데기가 있는 달팽이와는 달리 수분을 간직하기가 쉽지 않아서 낮에는 돌 밑이나 흙 속 같은 축한 곳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 숨어 지내다가 야간에 주로 활동한다.

 

식용 달팽이로 만든 요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랜 옛날 인류가 머물렀던 동굴 안에서 다량의 달팽이 껍질이 발견된 것에서 달팽이 요리가 오래된 역사를 지녔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는 귀족들의 별미로 여겨졌으며,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고급 요리라고 하기에, 필자도 프랑스에 갔을 땐 달팽이 요리를 먹어 보기도 하였지만, 삶아진 달팽이는 내가 보기에는 소라나 우렁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달팽이 요리는 달팽이를 고정시킬 수 있는 작은 원형의 홈이 파인 전용 접시에 담겨 나오고, 전용 집게와 끝이 두개로 갈라진 전용 포크를 사용하여 껍질속의 살코기를 빼낸 뒤 내장을 제거하고 먹는 점이 일반 요리와는 좀 색달라서 관심을 끌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달팽이 요리는 식용 달팽이로 조리하는 것이요, 괄태충이니 병안목이니 하는 민달팽이로는 요리를 해 먹는 법이 없다. 놈들에게는 기생충이 많아 함부로 먹을 수가 없는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놈들을 본격적으로 퇴치하기로 마음먹었다. 민달팽이를 비롯한 달팽이는 배추, 상추 등 채소류뿐만 아니라 선인장에 이르기까지의 화훼류도 갉아먹어 피해를 주는 광식성(廣食性)이라서 화초를 많이 기르고 있는 내게는 아주 치명적인 해충이기에, 놈들이 주로 활동하는 밤중을 이용하여 수분이 촉촉한 과일이나 오이 껍질 등을 놓아두면 그 즙을 빨아먹느라고 몰려든다. 실제로 사용하여 보니 수박, 참외 등 물기가 많은 과일 껍질이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모여 있는 놈들을 막대기 같은 것으로 집어서 방충망을 열고 아파트 아래쪽으로 내던져버리는 것이다. 놈들이 떨어져서는 죽는지 어떤지는 확인을 해 보질 않았지만, 9층에서 떨어지는 일이니 아마도 죽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직접 살생하지 않는 자비(?)를 베푸는 일만도 나로서는 대단한 양보를 하는 셈이라고나 할까?

와인이 맛있는 지방은 달팽이 요리도 맛있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놈들은 술독과 화분 사이에 많이 진을 치고 있어서, 특히 내게 더욱 미움을 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는 소금이나 설탕 등을 뿌리면 몸의 수분이 삼투압 현상으로 빨려나가면서 쪼그라들어 죽는다고도 하였는데, 다 먹고 난 과일 껍질로도 충분히 잡을 수가 있기에 아까운 소금과 설탕을 이용하는 실험까지는 하여 본 적이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회용 컵에 절반가량 맥주를 따라 거기에 담배가루를 함께 넣어두면, 맥주에 취해서 해롱대다가, 담배가루의 독 때문에 투신자살이라도 하듯 죽는다고도 하는데 글쎄 괜찮은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11.21. 15)

[문예운동,2021.여름 150호 특집, pp.280-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