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고 뛰놀던 탄천에서의 어린 시절
이 웅 재
“와아, 끝났다!”
한여름, 오전반이면 신이 났다. 6․25 직후의 초등학교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오전반의 수업이 끝나면 우리들은 달렸다. 책보를 어깨에서 허리 쪽으로 비스듬히 둘러메고는 달렸다. 아마도 오리는 넘고 십리는 못 되지 싶은, 탄천으로 달렸다. 지금은 서초구 세곡동, 그 당시에는 광주군에 속해 있었는데, 우리는 거기 대왕초등학교엘 다니고 있었다.
탄천, 동방삭이가 삼천갑자를 살고도 염라대왕을 우롱하며 죽지를 않자, IQ 200이 넘는 저승차사를 차출해 보내 잡아오게 했다던 곳이다. 저승차사는 동방삭이 주민등록지를 계속 옮겨 쉽게 찾을 수 없음을 알고, 특단의 수를 썼단다. 그 방법은 바로 탄천에서 숯을 씻는 일이었다. 며칠 몇 날을 그러고 있노라니, 하루는 어느 늙수그레한 영감 하나가 다가오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며 묻더란다. 저승사자 옳다구나, 됐다, 싶었지만 아주 능청스레 “숯이 너무 검어서 희게 하느라고 씻고 있소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소릴 들은 동방삭 왈, “내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숯을 희게 하겠다고 씻는 놈은 처음 보는구먼.” 하더란다. 저승차사, 나중에라도 발뺌 하지 못하도록 그 소릴 증거 삼아 녹음까지 해 가지고 동방삭이를 붙들어 갔고, 그래서 그 이름을 탄천[炭川; 숯내]이라 했다는데…, 요즈음엔 그 숯을 씻던 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곳이 어디인지를…. 그곳은 바로 우리들이 수업을 마치고 달려갔던 곳. 유독 그곳만은 수심이 깊어 두 길이 넘는 곳이었는데, 그 밑바닥에는 새까맣고 반질반질 윤기마저 도는 개흙이 지천(至賤)으로 널려 있었다. 우리들은 그곳으로 잠수해 들어가 검은 개흙을 한 줌씩 파 올렸었다. 동방삭이를 잡기 위한 저승차사가 얼마나 오랜 동안 그곳에 앉아 숯을 씻었던지 검정 숯가루가 침전되어 검은 개흙이 되었던 것이니, 그곳이야말로 바로 저승사자가 동방삭을 잡아간 곳임에 틀림이 없을 터이다. 그곳은 바로 복우물[福井洞] 근처,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수리조합에서 관리하던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는 곳에서 지금의 분당(盆唐) 쪽으로 몇 십 미터 상거한 곳에 있었다.
검은 개흙. 그렇다. 우린 그곳에서 목욕[수영]을 하곤 했는데, 늘 그 검은 개흙을 한 줌씩 파 올려선 벌거벗은 온몸에 발라서 검둥이가 되곤 했었다. 그럴 적마다 늘 큰소리치는 놈이 하나 있었는데, 놈은 그때 열네 살이었던가, 열다섯 살이었던가? 당시로서는 전쟁 통에 제때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서 나이 듬직한(?) 초등학생들이 한 반에도 두세 명씩은 있었을 때인데, 바로 그 중의 한 놈이 항상 으스대곤 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검둥이들은 그 무언가 물건이 남들보다 무지막지하게 크다고들 했는데, 온몸을 검은 개흙으로 칠해 검둥이가 되었을 때, 그 검둥이에게 알맞은 물건을 달고 있는 놈은 그 나이가 많던 놈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 놈은 물건만 큰 게 아니라 거뭇거뭇 머리털도 나기 시작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물고 늘어져 그의 권위를 끌어내리곤 했었다. 말하자면 그곳에 머리털이 나기 시작하고 있으니 얼마 안 되면 그 물건에 눈, 코, 귀, 입이 생겨 어린애가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곤 했던 것이다. 시커먼 그 놈이 어린애를 만들어 내는 놈이라는,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를 불확실한 이야길 근거로 그런 유추를 해 내었고, 그런 유추를 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우리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추켜세우면서, 우리는 매우 흡족해 하는 한편, 우리의 그 보잘것없는 물건에 대해 심히 자학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그 놈이 오래간만에 초등학교 동창회, 엄밀히는 동기동창회에 나타났는데, 뭐 대단할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때는 그 크고 시커먼 놈을 자랑하느라고 검은 개흙을 바른 다음엔 물속으로 들어가지도 않던 그 친구, 이젠 쪼글쪼글해져서 볼품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도 만만찮은 정도로 노후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미국놈보다는 훨 건강하고 활력에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검은 찰흙, 그것으로 거의 매일 전신을 도배했었으니, 요즘 같으면 그 비싼 머드팩으로 온몸을 싸 바르는 호사를 누렸던 것이다. 값으로 따져서도 엄청날 것이요, 따라서 그 얼마나 뛰어난 미용효과를 보았을 것인가? 그래서인지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은 아직도 모두들 피둥피둥하게 보이고 있다.
탄천 정비를 하면서 그 개흙의 존재를 몰랐던 것일까? 만일 알았다면 분명 그것은 고가의 상품으로 개발이 되었을 텐데…,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두 길 아래의 검은 흙, 그곳에서 목욕하면서 잠수해 들어가 보지 않고는 그것을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은 자꾸만 편리해지고 간편해지고 새로워지고 있다. 그렇지만 어렸을 적의 그 천진난만함, 그 무대가성으로 지내던 데에서 느꼈던 푸근하고 편안한 마음, 그것은 도대체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젠 그 동방삭이 붙들려간 탄천에서는 수영도 금지되어 있으니 어디 가서 그런 자연스러웠던 시간을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남은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는 듯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될 것이니까, 잠깐 귀 좀 빌립시다.
그것은 바로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동방삭을 잡아들이기 위해 탄천 가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느긋이 숯을 씻고 있던 저승차사의 인물 검색 방법, 그것을 원용하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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