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지엔느

젊은 엄마와 아이

거북이3 2006. 4. 11. 23:00
 

      젊은 엄마와 아이

                                                                                        이 웅 재

 탄천 산책로를 걸었다.

 어제 비가 내려서인지 산책로 투수 콘은 매우 산뜻한 느낌이었다. 바람도 살랑살랑, 그런 걸 미풍이라고 하던가? ‘노래방에만 가면 주눅 드는 남자’의 입에서 ‘동백아가씨’가 흥얼흥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주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4-5세쯤 되었을까, 깜찍하고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와 아주 젊고 청신한 모습의 그 엄마였다. 아마 처음엔 그 청신함, 아니 어떤 면으로는 그 발랄함 때문에 내 시선이 그쪽으로 고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은 어쨌든, 사내아이가 갑자기 넘어졌다. 물이 흐르도록 파 놓은 배수구를 덮은 철망에 걸렸던 모양이다.

 사내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곧장 ‘엄마!’를 부르며 ‘으앙!’ 울음이 터뜨려질 기세였다. 헌데, 반 박자 빠르게 그 엄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빨리 일어나!”

 조용하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 저 젊은 여인에게서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아이의 얼굴은 금세 굳어지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 젊은 엄마의 목소리엔 물리적인 소리가 사라진 뒤까지도 무겁고 엄하게 그 소리의 잔영(殘影)이 이어졌다. 넘어졌던 아이가 두말없이 툭툭 털며 일어나고 있었다. ‘으앙!’하는 울음소리는 이미 삼켜진 채였다. 하지만, 표정은 잔뜩 불만스러운 모습이었다.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의 손이 엄마의 손을 잡았다. 일순, 아이의 얼굴은 서서히 만족감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금 가더니, 한 곳에 주저앉는다. 아이도 엄마 따라 주저앉았다.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무어라고 소곤거린다.

 그들의 앞에는 노오란 민들레꽃이 화알짝 웃으며 피어 있었고, 바로 그 옆에는 보랏빛 제비꽃 하나도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뜨린 채 얼굴을 내민 모습이 보인다.

 아이의 얼굴은 이제 더할 수 없이 평화롭고 행복에 겨운 표정이었다.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존재로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있거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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