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문화 체험기 14)
사행천 불타바 강 언덕의 체스키 크롬로프와 시청사의 시계
이 웅 재
다시 오스트리아 국경. 역시 국경에서의 검사가 간편하다. 이곳 POLIZEI들은 여유만만, 무사통과를 시켜 준다. 비무장지대 비슷한 곳을 지난 체코 국경에서도 이에 뒤질세라 역시 프리패스. 지나가는 승용차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구경하기가 힘든 현대 포니가 있었다. 왕복 2차선의 차도엔 노란 선이 아예 없었다. 다시 차창 앞에는 빗방울이 부딪치기 시작한다.
드디어 체스키 크롬로프에 도착하다. 사행천(蛇行川)의 불타바 강 언덕에 세워진 중세 영주의 성이었다. 집들은 예상보다 컸지만 골목길은 좁았고, 담장 없는 집들이 길을 따라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동굴로 되어 있는 식당 Mastal Restaurace에서 현지식 식사를 하면서 맥주 1잔씩을 마셨다. 이쪽 지방에선 식사를 할 때 맥주를 마시는 것은 일상사이니까. 그리고 또 여기가 버드와이저(Budweiser)의 본고장이니까. 이곳의 버드와이저가 미국으로 전래됐고 이제는 버드와이저 하면 미국이 원산지로 알려진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주방에는 각국의 화폐가 액자 속에 넣어져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천 원짜리도 있었다. 식당 앞 광장에는 ‘Ꭵ'라는 표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방의 중심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사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표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데, 나는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
사방이 건물로 에워싸인 광장 한복판에는 페스트 퇴치탑이 보인다. 이 탑은 가는 곳곳마다 세워져 있었다. 비엔나의 호화찬란한 탑에서부터 시골구석의비교적 초라한 석탑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오래된 도시나 마을마다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페스트가 얼마나 이곳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던가를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증거물이었다.
체스키 크롬로프, 붉은 중세풍의 기와지붕 건물들이 연이어져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건물 사이로 흐르는 불타바 강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보기 드문 사행천,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하는 사행천은 우리나라에서는 동강(東江)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모습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것인데, 이 불타바 강은 통념을 깨고서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었다.
수차례에 걸친 전쟁 때문에 크롬로프는 파괴되었고, 무너진 건축물을 보수할 재력은 없고 해서 그대로 방치해 두었던 것이, 오늘날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어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건축물의 외벽은 원래는 돌로 꾸며져야 할 것인데 역시 돈이 없는 바람에 임시변통으로 손으로 그려넣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워낙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보다도 운치가 느껴지는 것이다.
성의 낮은 지역에는 제1광장이 있었다. 하인이나 기능공, 말 등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성문 아래 지하실처럼 되어있는 습지에는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오수를 즐기며 누워있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않은 사랑 얘기의 성주 상대쪽 가문이 곰을 상징하는 가문이었다는 것이다.
제2광장은 높고 깨끗했다. 영주와 그 가족들이 살았던 곳이다. 건물은 고딕과 르네상스의 특징이 혼합되어 있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건축되다 보니 서로 상치되는 점도 많고 하여 여러 가지의 부작용도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피사의 사탑처럼 상당히 기울어져 있기까지 하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좀더 올라가니 제3광장이 나왔다.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이곳은 사교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란다. 앞쪽으로는 망토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가파른 성벽 주변에는 계단식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열린단다.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 골목 몇 군데에 의자를 놓으면 그 곳이 객석이 된단다. 청량한 물소리와 산들거리는 강바람, 거기에 울려퍼지는 매혹적인 선율, 생각만 해도 환상적인 여름밤의 음악축제다.
중국식 음식점에서 석식을 한 후, 17세기경 화약을 저장하던 곳이라는 화약탑과 시민회관을 보고, 시계탑이 있는 시청사 앞에 이르렀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가이드의 말에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윗눈썹과 아랫눈썹은 어찌나 그리 금실이 좋던지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곧 만나고, 또 만나고 하는 바람에 코를 베어가든 말든 눈을 감았다 떴다 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 건물에는 크고 작은 시계 두 개가 있다. 6시 정각이면 종을 치고, 시계 위에서 그리스도의 12사도가 서너 명씩 교대로 나와 돌아간다. 이 시계는 늙은 시계공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인데, 여기저기서 제작 주문이 쇄도하는 바람에 시계의 주인은 그 늙은 시계공이 더 이상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장님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장님이 된 시계공은 자기가 만든 시계를 단 한 번만이라도 만져보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하여, 마지못해 만지게 하였더니 그만 그 장님 시계공의 손이 닿자마자 시계는 멈추고 말았단다. 얼마 후 다른 시계공에 의해 수리를 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한하고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잘 말해 주는 일화라고 하겠다.
여기 시청에서는 결혼 신고도 받아주었는데, 결혼 피로연에서는 밤새 먹고 다시 더 먹기 위해서 토하고, 토하고 나서 다시 먹고, 먹은 후 또다시 토하고 했다고 한다. 귀족들의 경우 얼마나 잘 먹느냐,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귀족다움의 척도였다는 것이다. 점잖은 체면에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서 토할 수는 없고, 그래서 깃털로 목구멍을 간질여서 토하게 했단다. 지금 양복 상의 왼쪽 깃에는 단춧구멍 같은 것을 뚫어놓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단춧구멍이 있을 필연성은 전혀 없는데 말이다. 그것은 단춧구멍이 아니라 바로 토하려 할 때 사용할 깃털을 꽂아두는 자리였다는 것이니, 내 원 참,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
(06. 7. 27. 원고지 15매)
'동유럽 문화 체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을 업그레이드하는 여행 (0) | 2006.08.30 |
---|---|
(동유럽 문화 체험기 15: [大尾]) 전철에 무임승차하고, 황금소로에서 카프카를 만나다 (0) | 2006.08.01 |
(동유럽 문화 체험기 13) 동화 속 호반의 마을, 할슈타트 (0) | 2006.07.29 |
(동유럽 문화 체험기 12)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미라벨 궁전과 샤프베르크 산 (0) | 2006.07.28 |
(동유럽 문화 체험기 11) 눈 깜짝할 사이에, 그에 못지않게, 그보다 더 빠르게 (0) | 2006.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