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문화 체험기 15: [大尾])
전철에 무임승차하고, 황금소로에서 카프카를 만나다.
이 웅 재
밤 10시.
가이드가 ‘빨리빨리’를 외친다.
“우리, 전차 공짜로 타 봐요!”
1정거장, 1유로 정도 한다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시간인지라 전차표를 살 수가 없는 실정이니, 한 번 무임승차하자는 거다. 적발되면 50배 벌금을 물어야 한단다. 그러나 지금 시간에 그거 조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차에 타서는 ‘소데스까’ 등의 말을 사용하란다. 혹시 걸릴 경우엔 ‘스미마셍’이라고 하고. 그런데, 어디 그런가? 차에 탄 사람들 모두가 우리말로 주절댄다. 우리가 탔던 전차의 차량번호는 7,075번이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차에서 내린 우리는 불타나 강 야경으로 빠져들었다. 전에 보았던 다뉴브 강 유람선에서의 야경은 화려했는데, 이곳의 야경은 은은해서 나름대로의 정취가 느껴졌다.
7월 1일, 토요일.
프라하 성을 보러 갔다. 대통령 집무실에는 깃발이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통령이 지금 집무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체코는 1989년 11월16일부터 12월29일까지의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당시 공산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 무혈혁명을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이라고 하는데 이 혁명으로 그해 12월 시인이자 민주주의 운동가인 바클라브 하벨(Vaclav Havel)이 대통령에 올랐다.
하벨 대통령,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정한 평화상 1회 수상자란다. 영부인이 죽자 6개월 만에 재혼을 했는데, 새 영부인은 포르노 배우 출신이란다. 우리나라 같으면 도저히 용납이 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다음 내부가 크리스털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다는 비샵(VSTUP) 성당을 일별하고 황금소로로 갔다. 황금소로는 성벽에 붙박이로 만들어진,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길이다. 이곳은 16세기 후반, 프라하 성을 지키는 24명의 군인들 의 막사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이후 왕실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The Golden Lane)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 집들 가운데 왼쪽 2번째 집인 22번지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카프카(kafka)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의 ‘城(castle)’은 바로 프라하 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며, ‘변신’을 비롯한 많은 단편도 이곳에서 집필했다고 한다. 키다리였던 카프카는 "살기에 불편하긴 해도 나에게 알맞은 집"이라고 했단다. 지금은 1층은 기념품가게 등으로 바뀌었는데, 19번지는 현 하벨 대통령 부인이 세운 ‘올가 재단’에서 경영하는 선물가게이다. 그리고 2층은 주로 중세시대의 무기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그곳을 나와 조그마한 광장으로 가니 소년의 나상이 서 있었는데, 물건 하나만 반질반질했다. 그걸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어서 우리의 딸딸딸 엄마는 그것을 쥐고 놓을 줄을 몰랐다.
내리막 계단길, 거기엔 ‘남의 불행은 나의 추억’이라는 글귀가 씌어져 있단다. 좌우로 오밀조밀한 포장마차 선물가게들이 늘어서 있어서 그것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면 넘어지기가 십상이라는 것인데, 그걸 주의하라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서 써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라하에서 가장 낭만적인 다리라는 까를 교(橋). 엊저녁에도 지나갔던 다리다. 이 다리는 동구권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길이 520m의 보행자 전용 다리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여주인공 테레사는 삶의 가벼움을 즐기는 남편 토마스처럼 엔지니어와 하룻밤 사랑을 나눈 후 바로 이 다리 밑에서 잿빛 강물을 보며 “프라하를 떠나고 싶다”고 통곡한다. 까를 대교는 항상 기타를 치는 사람,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사람,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 등 거리의 예술가들로 북적거린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은 불타바 강,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가면 몰다우 강이라 불린단다. 다리 양 옆에는 30여 개의 성상이 늘어서 있는데, 그 중앙 난간의 십자가 플레이트에는 손을 올려놓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관광객의 늘어서 있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다리 양옆으로는 그림이나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까를 대교의 아래쪽 대수도원 광장 벽에는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 존 레논(John Lennon)의 얼굴이 그려진 낙서벽이 있다. 처음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그려놓은 태극기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웬걸, 그 크기에서 모든 낙서들을 압도하는 '독도는 우리땅' 등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그 비문화적인 치기에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낙서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자그맣게 그 낙서의 대열에 참여했다.
중식 후, 명품관 Swarovski엘 둘러 보았는데, 명품관답게 모든 물건들이 비쌌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로 여기는 ‘씨발 놈의 새끼’로구나 하고 한 마디씩 적선을 해 주었다. 프라하 역에서 버스를 타면서 딸딸딸집의 두 대학생 딸딸을 기차역으로 보냈는데, 나머지 아들이 되지 못하고 딸이 된 꼬마 딸이 이별을 슬퍼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걸 보고 현지 가이드가 한 마디 거들었다.
“언니들, 끌려가는 거거덩!”
두 딸딸은 남아서 배낭여행을 계속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딸딸과의 이별은 우리의 여행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일, 오후 4시경 우리도 루지니에(Ruzyne)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나머지 여유시간을 면세점에서 보냈는데, 잔돈 3유로 40센트가 남아서 그걸 써 버리려고 별별 노력을 다 해 보았으나 도저히 거기에 꼭 맞는 물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나에게 남겨준 마지막 교훈 한 가지는 바로 이거였다.
“돈 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06. 7. 29. 원고지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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