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업그레이드하는 여행
이 웅 재
생활을 업그레이드하려거든 여행을 할 일이다. 여행은 현실에서 떠나는 일이다. 따라서 반복되는 일상, 때로는 따분하고, 가끔은 지루하고, 또 어떤 때는 지겹기까지 한 나날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모든 책임과 의무를 잠시 접어둔 채, 자유로운 비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 여행 말고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모두들 체험해 보지 않았는가? 어렸을 적 소풍가기 전날의 흥분과 설렘을…. 혹자는 말한다.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여행 전날의 흥분과 설렘의 시간이라고.
대학 동기동창들끼리 치기 비슷하게 유럽 여행을 위한 적금을 부었었다. 그게 만기가 되었고, 그러니 떠나야 했다. 더구나 몇 년 전에는 내 환갑 기념으로 괌엘 다녀왔는데, 금년은 아내의 환갑이다. ‘여행할 때 아내를 동반하는 것은 마치 연회에 도시락을 지참하는 것과 같다’는 영국 속담이 있지만, 나는 영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었으므로 그와 같은 속담은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함께 떠나려던 동기생들끼리의 여행이 무산이 되는 바람에, 오히려 이번 여행은 아내와 단 둘이서만의 여행으로 바뀌어 버렸다.
6월 24일, 토요일. 새벽 4시에 월드컵 대 스위스전이 있었다. 1승1무의 한국 팀은 아쉽게도 0:2로 패함에 따라 16강 진출은 좌절되었다. 동기생들끼리의 여행은 무산되었고, 밤잠도 설치게 했던 월드컵에 대한 기대도 한풀 꺾이고…. 어찌 생각하면 차라리 이번 여행을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닐까도 여겨졌다. ‘길을 떠나려거든 눈썹도 빼어놓고 가라’는 말을 따라 짐이 될 만한 것은 줄이고 줄였는데도 아내와 나는 바퀴 달린 가방 말고도 들고 메는 가방을 하나씩 추가하고서야 준비가 끝났다.
비행기는 30분 연발하여 14:30에 이륙, 현지시간 18:15에(한국시간 25일 01:15, 시차 원래 8시간인데 서머타임 때문에 7시간)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에 도착하였다. 무려 11시간의 비행, 한 자리에 앉아 기내식을 2번이나 먹어야 하는 기나긴 여행이었다. 지겨워서 블라인드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고 위스키를 청해 마시기도 하였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공항을 벗어나자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대에서는 모처럼 짧은 줄을 찾아 섰는데, 웬걸, 제복을 입은 직원은 심사대를 크로스하는 것이 아닌가? 첫 번째 공산국가의 잔재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렇다. 여행이란 떠남인 동시에 새로운 만남이 아니던가? 어떤 것을 만날까 하는 기대감, 무엇을 만날까 하는 두려움, 그러한 뒤섞인 감정을 가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 여행이 아니던가?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따진다면 지구상에서 약 90여 년간 생존했던 공산주의. 그것이 유럽에서 흥성했던 이유는 봉건 영주 중심의 생활에 대한 반동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만나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식 분배는 작업에 대한 열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일하고 먹고 살아야 하다 보니까 2사람이면 족할 업무도 10여 명이 배치될 뿐만 아니라,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독려해야 하는 필연성 때문에 저절로 권위주의가 자리잡게 된다. 결국은 똑같은 신분이어야 할 공산주의 사회는 정반대로 계급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모순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면 오히려 공산주의식 계급구조를 타파하여야만 되는 일, 말하자면 공산주의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동유럽은 다시 공산주의를 버린 것이다. 그 간단한 진리를 지금까지도 우리의 북한만이 외면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체코, 우리가 체코슬로바키아로 알고 지내던 나라, 93.1.1부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나라인데, 체코인은 좀 다혈질이고, 슬로바키아인은 슬로우 바퀴처럼 약간 느리고 순박하단다. 체코는 우리 남한보다 약간 작은 나라, 인구는 우리의 1/5정도인 천만이 살짝 넘는단다. 동유럽의 나라들은 대부분 GNP 만 불 정도. 공산주의 국가였었기에 아주 후진국쯤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행 내내 느낀 점이지만 동유럽은 전체가 천 년 고도. 그 건물 하나하나가 우리들을 주눅 들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인 체코어를 사용하면서도 문맹률이 거의 없는 나라라면, 한때 건널목에 ‘서시오’, ‘가시오’라는 문자로서 표시했던 우리나라로서도 놀랄 만하지 않은가?
호텔로 가는 도중 좌측으로 전차가 지나간다. 이쪽의 교통수단은 거의가 비슷하다. 지하철, 전철, 전기버스, 일반버스 등등이 대중교통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가급적 공해유발을 피하기 위한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에마저도 쌍굴 터널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왕복 8차로의 터널을 뚫는 우리로서는 배워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행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떠나는 즐거움을 주고, 만나는 기대감을 주고, 삶의 여러 가지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게다가 여행이란 돌아갈 내 자리가 있기에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여행은 누구에게나 소망으로 치부되고, 낭만으로 느껴지고, 충만으로 마침표를 찍는 인생의 활력소인가 보다. 돌아갈 자리가 없다면 그것은 영원한 이별의 행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서 행복과는 오히려 거리가 먼 일이 되겠지만, 여행은 늘 되돌아옴으로 막을 내리지 않는가? 골치 아픈 현실에서 잠시 떠나서 새로운 만남으로 여러 가지를 배우고, 그리고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자, 시간을 내서 떠나 보자. 외국이 아니라도 좋다. 먼 곳이 아니라도 좋다. 여럿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도 좋다. 혼자라도 떠나보자. 여행은 인생을 업그레이드해 준다.
(06. 8. 29. 원고지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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