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55. 도깨비 방망.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55)
도깨비 방망이는 어디 가서 찾아야 되나
이 웅 재
4월 21일(목).종일 맑고 저녁 무렵 한때 눈.
8:30쯤 재스퍼를 출발하여 밴프로 향했다. 출발하자마자 사슴 2마리와 조우하여 기분이 째졌는데, 호사다마라던가? 입장료 면제기간이 지났는지 하루치 입장료를 지불하란다. 도리 없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고맙다는 표시일까? 작은 사슴 한 마리가 우리를 영접한다. 그리고는 곧 혼자서는 성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는지 조금 있더니 아까보다는 약간 큰 또 한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밴프에서 올 때는 못 보았었는데, 오늘은 사슴 천지다. 비슷한 크기의 사슴 두 마리가 또 현신한다. 이번에는 차도에까지 나와 있었다.
며칠 전보다 계곡물의 양이 훨씬 많아졌다. 봄으로 접어드는 길목이라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온도가 높아지며 따라서 쌓인 눈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때문인 듯하다. 서영이와 아내가 늑대를 보았다고 해서 차를 되돌리어 찾아보았으나 못 찾고,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만 확인했다.
엊그제 설상차를 타던 Columbia Icefield의 주차장을 가다가 보니 1844라는 숫자가 쓰인 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에는 조금 이상한 생각을 했었다. 이 부근의 산들은 보통 2,3천 m인데 1844라니? 알고 보았더니, 1844년도까지 Athabasca Glacier가 있었다는 표시였다. 그러니까 이 빙하는 조금씩 녹아버리고 있는 것, 언젠가는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무서운 경고 메시지였던 것이다.
Columbia Icefield를 지나서 좀더 가니 뿔난 도깨비 모양의 산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어떻게 저런 모습을 만들어 내었을까? 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도깨비 방망이로 이러한 멋진 경관을 만들어 놓은 후, 그 방망이는 잃어버렸는지 방망이에 해당하는 모양은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도깨비 방망이 얘기는 『흥부전』의 근원설화(根源說話)다. 이 설화는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이 지은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에 나온다. 설화의 명칭은 「방이설화(旁㐌說話)」. 그런데 그 설화의 주요 매개물이 되는 도깨비 방망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것이나 찾아내면 세상만사 가지고 싶은 물건이면 내 마음대로 얻을 수가 있을 텐데…. 그래서 알아보았다.
애석하도다! 그 방망이는 방이(旁㐌)의 후손 중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장난삼아 “낭분(狼糞; 이리 똥) 나와라, 뚝딱!” 하고 주문을 외는 바람에 부정을 타서 뇌성벽력을 치면서 억수같이 비가 내려 어디론가 쓸려가 버렸다고 한다. 아마도 그 방망이는 흘러흘러 남해바다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부터라도 만사 제쳐놓고 스킨스쿠버다이빙(Skin Scuba Diving)이나 배워 도깨비 방망이나 찾아 나설까? 정년퇴임한 후 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역시 전에 지나갔던 U자형 도로에 접어들어 좀더 자세히 관찰하니, U자형뿐만 아니라 S자형의 도로도 함께 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계곡 사이에 다리라도 건설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길이라 여겨지는데, 왜 이처럼 U자, S자형의 길을 그대로 두었을까를 생각해 보다가 나의 무지함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가급적 자연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호하겠다는 캐나다 인들의 굳은 의지가 그 U자, S자형의 길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밴프나 재스퍼의 관광명소들에서는 매연이나 소음으로부터 관광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관광버스마저도 그 운행횟수를 제한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까마귀발 빙하가 있었던 곳을 지나갈 때에는 실물 까마귀 한 마리가 도망도 가지 않고 길가에 어슬렁거렸는데, 조금 있으니 또 한 마리가 나타나서 관광객들이 주는 과자를 받아먹기도 했다. 사실은 이런 행위도 국립공원 직원들에게 발각되면 과태료에 처해질 행동이었다. 야생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그들의 야성을 무력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라서 금지되어 있는 까닭이다.
밴프 입구에서 기찻길과 마주쳤다. 마악 기차가 지나가기 위하여 ‘땡땡땡!’ 소리가 요란하게 났는데,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려면 몇 분은 허비해야만 하겠다 싶었다. 아, 그런데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기차는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두 량짜리의 기차였던 것이다.
1:30쯤, 드디어 밴프에 도착하다. 지난번에는 눈이 내려서 이곳의 Gondola는 운행을 하지 않아 타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대망하던 곤돌라를 타게 되었다. 어른은 30$, 아이들은 15$였다. 원래는 4명이 타게 되어 있는데 같은 가족의 아이 두 명이 더 있으니까 그냥 태워주었다. 중간에서 밖을 내다보니 신발을 던져서 나무에 걸려 있는 것도 두 군데나 있어 이채로웠고, 눈 덮인 산을 발아래 꿇어 엎드리게 하는 호연지기도 나쁘지 않았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정상에는 기념품점도 있어서 눈이 심심하지 않았고, 그보다도 전망대 가는 길이 백미였다. 전망대까지는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상당히 먼 거리였고, 무엇보다도 눈이 얼어붙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다. 게다가 바람은 또 어떻게나 세차게 부는지, 얼굴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인내심을 다독이고 다독여서 목적지엘 도착해서 사방을 전망할 때의 쾌감이란 정말이지 필설로 표현하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한 일인 듯이 느껴졌다.
그렇게 곤돌라를 정복한 후, Canadian Rockies Hot Springs라는 노천혼탕으로 갔다. 65세 이상의 Senior와 아이들은 5.15$였다. 마침 눈까지 펄펄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경험하기 어려운 노천혼탕에서의 추억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게다가 그곳 기념품 가게 아저씨가 내게 먼저 말을 건네 와서 한참 동안이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분은 한국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이곳으로 와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석식을 한 다음 전에 머물렀던 Best Western Hotel로 찾아들었더니, 이 호텔에서 제일 큰 방 2개를 내어주는 바람에 수영도 즐기면서 아주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2012. 4. 4.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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